[1~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학습을 위한 읽기’는 글의 내용에 해당하는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목적의 읽기로,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기억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대표적인 읽기 전략으로는 SQ3R이 있다.
SQ3R은 ‘훑어보기’, ‘질문하기’, ‘읽기’, ‘암송하기’, ‘재검토하기’의 다섯 활동으로 진행된다. 먼저 제목, 목차, 요약문 등을 훑어보면서 글의 핵심 내용을 개관하고 예측한다. 그리고 훑어보는 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질문을 만든다. 다음으로, 만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며 글을 읽는다. 읽은 후에는 글에서 중요한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 보는 과정을 통해 기억하며 암송한다. 마지막으로, 글의 전체 내용을 다시 확인해 보고, 읽은 내용을 재검토한다.
이 전략의 읽기 전 활동인 ‘훑어보기’와 ‘질문하기’는 능동적 읽기에서 매우 중요하다. 훑어보기는 글의 내용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미리 파악하는 것이다. 독자는 대강의 내용을 훑어봄으로써 중점적으로 읽어야 할 내용을 찾고, 글의 전반적인 내용을 확인함으로써 배경지식을 활성화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글에 대한 적응력이 높아져 읽는 속도가 빨라지고, 읽은 내용을 짜임새있게 구성하여 더 오래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질문하기는 읽는 목적을 고려하여 질문을 만드는 것이다. 읽는 과정에서 독자가 질문을 활용하면, 답을 찾으며 읽기 때문에 중요한 내용을 더 잘 선별할 수 있게 된다. 또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내용에 집중하여 읽기 때문에 더 오랫동안 기억하고 회상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질문하기의 효과는 타인이 질문을 제공한 경우에도 발생할 수 있지만 스스로 만든 질문을 활용하여 읽으면 독자의 능동성은 더욱 강화된다.
SQ3R에 ㉠새로운 활동을 추가한 여러 전략들도 제시되었다. 그중 하나는 ‘관점 바꾸기’를 추가한 전략이다. ‘관점 바꾸기’는 글의 내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저자의 입장이라면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어떻게 글의 순서를 짤 것인지, 어떤 내용 전달 방법을 활용할 것인지 등을 생각해 보며 읽는 활동이다. 저자의 입장에서 글을 읽는 태도를 갖기 시작하면 내용을 분석적으로 읽을 수 있다. 또 다른 전략에서는 ‘숙고하기’를 추가하였는데, 이는 글을 읽은 뒤에 자신의 배경지식과 이해한 내용을 연결하여 글의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활동이다.
[4~9]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조선 시대의 노비는 주인이 상속․매매할 수 있는 물적 성격을 지녔지만, 재산권 및 소송권 등 자유와 권리도 부분적으로 인정 받았다. 조선 전기에 증가하던 노비의 수는 왜란과 호란 이후에 감소 추세를 보였고, 여러 사정으로 양인과 노비의 신분 격차도 줄어들었다. 이러한 변화는 노비에 대한 인식 변화로 이어졌고, 이전에는 찾기 어려운 ㉠양반들의 노비에 대한 글로 구체화되었다
양반들은 노비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행적을 기록한 여러 글을 통해 노비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표면화하였다. 충성스러운 노비를 충(忠)이라는 성리학적 이념을 투사하여 칭송하였고, 노비를 작고 연약한 존재로 형상화한 시선은 주인이 노비를 대하는 온정적 차원에 머물렀다. 노비의 의연한 행동과 의지를 강조하면서도 노비의 불평 등한 여건과 처지는 거론하지 않았다. 빈한한 주인을 위해 희생하는 노비의 애환에 관심을 ⓐ두면서 노비에 대한 미안한 심경은 드러 냈지만 신분 질서를 정면에서 문제 삼지 않았다.
이러한 양반들의 시각과 달리, 실학자 ㉮이익(李瀷) 은 다른 각도에서 노비 문제에 접근하였다. 그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천명(天命), 천체의 운행에 따라 길흉을 점치는 영역인 성명(星命), 시세(時勢)에 따라 인간의 힘이 참여하는 조명(造命) 으로 운명을 나누었다. 천명과 성명은 인간이 하는 일에 관여 하지 않는 자연 이치로 간주하고, 조명은 인간이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빈부, 귀천 등을 바꾸어 가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는 조명의 대상을 왕과 고관대작으로 한정했던 이전 학자들의 논의와 달리, 노비를 포함한 모든 사람으로 확대하였다.
그는 사회의 전 구성원이 주어진 상황에서 각자의 노력으로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신분은 세습이 아닌 개인의 재주와 덕행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고 본 그는, 노비의 매매와 세습을 금지하면 노비가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그는 양반 중심의 사회에서 벗어나 모두에게 기회를 개방 하고자 하였다. 그에게 인간 삶의 변화는 각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고, 국가의 역할은 조명이 가능한 최소한의 기반을 보장해 주고 결과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
19세기 말부터 서구의 기본권 사상이 알려지면서 민권에 대한 논의가 구체화되었다. 임오군란 이후, 급진 개화파는 사회 개혁의 핵심 중 하나로 민권 신장에 관심을 기울였다. ㉯유길준 은 근대 국민 국가 달성을 위해 필요한 존재로 민(民)에 주목하였다. 그는 민에게는 절대적인 천부 인권 이외에 사회 계약에 의한 상대적 권리인 인위적 권리가 있고, 두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면 근대적인 법률의 제정과 시행이 필수적이라고 역설하였다. 하지만 그에게 민은 무지한 존재였기 때문에 교육받지 않으면 사회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존재로 간주되었다. 박영효는 민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국권(國權)도 위태롭다고 보았다. 그리고 민의 자유와 권리는 법을 통해서만 존재 가능하고, 법을 지킬 때만 보호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김윤식을 비롯한 온건 개화파는 국가의 노비 세습 금지령 공포에대해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인간은 타고난 능력에 따라 귀천이 생기고 이에 따라 부림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였다. 민의 평등을 인정하면서도 신분 차별을 정당화하는 양면적 태도를 보인 것이다.
민권에 관한 개화파의 주장은 여러 상황과 맞물려 갑오개혁의 신분제 폐지라는 법제상 조치로 이어졌지만, 노비는 잔존했고 사회적 차별도 지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립 협회는 자유와 평등은 하늘이 준 권리임을 근거로 노비 소유와 매매를 맹렬히 비판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도 신분 차별이 이어지는 가운데 차별받던 백정들의 인권 존중을 요구하는 형평 운동이 전개되었다. 1923년에 경남 진주에서 형평사가 조직되어 시작된 이 운동은 경제적 부를 쌓은 백정들과 사회 운동가들이 결합하여 본격화되었고, 이후 대중의 호응을 이끌며 전국화되었다. 이 운동은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이루려는 인권 운동이자 참여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공동체 운동의 성격을 가졌다. 이 운동의 도화선이 교육 차별이었던 만큼, 사회적 대우를 받으려면 소양을 갖춰야 한다는 인식에 따라 교육 활동이 펼쳐졌다. 그리고 회원들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활동을 일상에서 실천하고 이를 제도화하고자 분투 하였다.
다른 사회 운동과의 연대를 통해 변화를 모색했던 형평 운동은 내부 분열과 갈등, 일제의 억압이 이어지면서 위축되었고, 1935년에 형평사가 대동사로 개칭되면서 운동 본래의 성격을 잃었다. 하지만 불평등한 사회의 개혁을 추구한 이 운동은 이후의 인권 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10~1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완전경쟁시장의 경제 주체는 완전한 거래 정보를 갖는다고 가정되지만, 현실의 경제 주체는 정보 획득을 위한 투입 비용의 차이에 따라 취득 정보의 양과 질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정보 비대칭 상황에 처한다. 대표적인 정보 비대칭 상황은 거래의 한쪽이 상대방에 비해 정보를 더 적게 가지는 경우이고, 이때 정보를 적게 가진 경제 주체는 낮은 품질의 상품을 상대적으로 더 비싼 가격에 선택하는 역선택 문제에 직면한다. 정보 비대칭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법에 근거하여 시장에 개입한다. 예컨대 정부는 합리적 소비에 필요한 성분이나 효능 등의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할 것을 공급자에게 강제한다.
정보 비대칭 문제는 온라인 상거래에서도 발생한다. 생성형 인공 지능이 활용되면서 이용자가 정보의 진위나 의도, 편향 등의 여부를 알기 어려운 허위․과장 광고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관련 법률 조항 을 통해, 인공 지능을 활용한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에게 생성형 인공 지능 사용 여부를 표시하도록 하는 생성물 표시 의무를 강제하였다. 하지만 광고성 정보를 제작하여 게시한 정보 제공자와 광고성 정보가 유통되는 플랫폼 사업자에게도 그와 같은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렇듯 온라인 정보 비대칭 상황에 대한 정부 개입에 관하여 엇갈리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이 외에도 사회적․정치적 견해 표명에 대한 정부 개입 여부를 두고도 구분되는 입장이 제시되고 있다.
완전경쟁시장 모델을 상정하는 ㉠사상의 자유 시장 이론 에 따르면, 어떤 표현의 진위나 가치 여부는 다양한 의견 간의 경쟁을 통해 결정되어야 하며 정부가 개입하면 안 된다. 이를 근거로 미국 연방 대법원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해당하지 않는 표현은 기본권으로 보호하고, 플랫폼 시장에도 사업자의 자율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 재판소도 사회적․ 정치적 표현의 진위나 가치 여부는 사상과 의견의 경쟁으로 해결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사상의 자유 시장 이론에 대한 비판론 도 제기되었다. 비판론에 따르면, 진실한 정보는 과소 공급되고 허위․왜곡 정보가 대량 공급되는 상황에서는 다양한 의견 간의 경쟁이 이루어질 수 없다. 또 허위․왜곡 정보가 시민의 사회적․정치적 사안 판단에 쓰이고, 정책 담당자도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의도적으로 유통한 정보를 시민의 진정한 의견으로 오인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에 따라 비판론은 민주주의 의사 결정의 왜곡을 막기 위해 플랫폼과 정부의 공동 규제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표현의 자유가 기본권 이라는 점을 감안해 법적 근거를 갖추되, 유해하거나 불법인 정보를 플랫폼 사업자가 사전에 자율적으로 삭제하거나 차단하고, 미흡하면 사후에 정부가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개입 여부에 대한 엇갈린 논의는 헌법 재판소의 ⓑ실명확인 사건 에서 표면화되었다. 선거 운동 기간 중에 게시판 이용자의 실명 확인 조치를 하지 않은 인터넷 언론사를 제재하는 법률 규정의 위헌 여부에 대해, 헌법 재판소 ‘다수 의견’은 해당 규정이 위헌이라고 결정하였다. 반면 ‘소수 의견’은 비판론과 같은 취지에서 허위․왜곡 정보는 토론 등 자율적 방법으로 교정되기 어렵다고 주장하였다. 플랫폼과 인공 지능 활용이 일상이 된 시대에 새겨 봐야 할 대목이다.
[14~17]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우리는 물방울, 비눗방울, 기포 등이 구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구형은 동일한 부피에서 표면적이 최소인 형태인데 이는 액체 분자 간의 인력으로 ⓐ발생하는 표면 장력의 작용 때문이다. 액체 방울에서 방울의 외부 압력과 표면 장력으로 인한 압력의 합이 내부 압력과 균형을 이룰 때 방울은 그 크기를 유지한다. 이때 내부 압력은 액체 방울을 팽창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고, 외부 압력과 표면 장력으로 인한 압력은 액체 방울을 수축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 이들 간의 관계는 라플라스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식에 따르면 액체 방울의 내부 압력과 외부 압력의 차이는 구형의 액체 방울에서 표면 장력에 정비례하고 액체 방울의 반지름에 반비례한다.
라플라스 식은 사람이 호흡할 때 폐포에 작용하는 압력과 표면 장력 사이의 관계를 설명할 때도 유용하다. 폐포에는 그 내부의 압력과 인체 외부 공기의 압력의 차이로 인해 공기가 드나든다. 이는 공기가 압력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폐포를 둘러싸고 있는 액체층의 표면 장력은 폐포를 수축하게 하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지질과 단백질로 ⓒ구성된 계면 활성제가 분비되어 액체층의 표면 장력을 낮춘다. 이에 따라 폐포의 확장이 쉬워진다.
라플라스 식은 두 기포가 합쳐지는 경우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크기가 서로 다르고 구성 물질은 같은 두 기포가 접하여 하나로 합쳐질 때 한쪽 기포에서 다른 쪽 기포로 공기가 이동한다. 이 결과로 ㉠두 기포가 합쳐져 기존의 기포보다 더 큰 기포 하나가 만들어진다.
실생활에서 라플라스 식과 관련된 사례로 잉크젯 프린터를 들 수 있다. 잉크젯 프린터에서는 분사 장치의 노즐을 통해 잉크가 분사된다. 이때 분사된 잉크는 공기 중에서 방울의 형태가 되며 이 잉크 방울은 종이에 ⓓ도달한다. 라플라스 식에서 알 수 있듯이, 이때의 구형의 잉크 방울에서도 내부 압력은 외부 압력 보다 높다.
구형의 잉크 방울이 형성되는 것만으로 인쇄가 제대로 이루어 지는 것은 아니다. 잉크 방울이 노즐에서 나와서 목표 지점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도착하는지의 정도는 ‘오네소르게 수’로 표현된다. 오네소르게 수는 잉크의 점도, 표면 장력, 밀도와 잉크젯 프린터의 노즐 지름에 의해 결정된다. 점도란 끈적거림의 정도를 말하며 액체가 끈적끈적할수록 점도가 크다. 오네소르게 수는 잉크의 점도가 클수록 크고, 잉크의 표면 장력, 잉크의 밀도, 노즐의 지름, 이 세 값의 곱이 클수록 작다. 따라서 이러한 요인들을 알맞게 ⓔ조절함으로써 안정적인 인쇄가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오네소르게 수의 범위가 대략 0.1에서 1.0 사이이면 안정적인 인쇄가 가능하다. 가령 점도가 커서 오네소르게 수가 이 범위보다 크게 되면 잉크가 노즐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이와 반대의 경우, 수많은 위성 잉크 방울이 생겨 원치 않는 오염이 발생한다. 오네소르게 수에 영향을 주는 네 요인에 의해 오네 소르게 수가 결정되면 이로부터 안정적인 인쇄 가능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18~21]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아들 천달이의 안부를 모르는 양 생원은 절로 한숨이 쉬어졌다. 천달이뿐 아니라, 두칠이 용팔이한테서도 떠나간 이후로 전혀 소식이 없었다.
도토리가 말짱 떨어지자, 하늘에 기러기가 묻어 들었고, 희뜩 희뜩 눈 잎사귀가 휘날려 왔다. 그리고 동네에 참 슬픈 일이 하나 생겼다. 모량댁이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방 안에 한 방 피를 토해 놓고 쓰러지면서도 모량댁은 곧장 두칠이를 목메어 불렀다는 것이다. 두칠이의 어린 동생들이 참 불쌍하게 되었다고, 갑분이는 누구보다도 정말 가슴 아파했다.
함박눈이 마을을 덮었다. 하루는 또 총을 멘 순경 한 사람과 면 서기에 틀림없는 양복쟁이 하나가 강가에 와서 섰다. 삼바우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난봄의 일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나룻배에 태우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을에 들어온 그들은 아무개 아무개네 집이 어디냐고 하면서 눈에 묻힌 골무샅*을 돌아다녔다. 그런 일이 있은 사흘 후, 또 두 사람의 젊은이가 소리를 지르면서 마을을 떠나갔다. 영장이 나왔던 것이다. 동식이와 수만이었다.
[중략 부분의 줄거리] 두칠이가 불구의 몸이 되어 오고 얼마 후에 천달이는 전사하여 유해만 돌아온다. 천달이의 유골 매장을 도와준 삼바우는 술을 마시고 취기가 오른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하얗게 돌아간 밭모퉁이를 까만 그림자가 두 개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삼바우는 이마에 손을 얹고 오는 거 아니가? 그렇잖으면 ㉡동식이하고 수만이 가들 둘인강? 그쪽을 바라보며 으으윽! 크게 트림을 했다. 혹시 우리 용팔이 아니가? 용팔이가 오면 혼자 올 낀데…… 보자, 동식이캉 같이 삼바우는 두 눈을 곧장 껌벅거린다. 그러나 점점 가까워지는데 보니, 그것은 용팔이도 아니고 , 동식이도 수만이도 아니다. 자세히 보니, 하나는 총을 어깨에 메고 있고, 하나는 양복쟁이에 틀림없다.
“이크!” 삼바우는 가슴이 덜컥했다. 결코 반가운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 오는구나. 또 누굴 데려갈라고……. 술기와 함께 온몸의 피가 얼굴로 치솟는 듯했다. 입술도 부들부들 떨렸다. 벌써 몇이나 데려갔노 말이다. 데려가서 두칠이는 그 꼬라지를 만들어 놓았지, 천달이는 돌려준다는 것이 뼈다귀뿐이지, 더구나 우리 용팔이한테서는 소식도 없지, 동식이, 수만이도 마찬가지고, 그만하면 됐지, 또 누굴 데려갈라고, 염치도 없는 것들 같으니……. 삼바우는 뿌드득 어금니를 문다.
“안 되지, 안 돼!” 주먹을 불끈 쥐고, 한쪽 발로 땅을 쾅! 내리구른다. 기세가 이만저만 아니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총을 멘 사람과 양복쟁이의 얼굴이 또렷하게 바라보일 만큼 가까워지자, 그만 아랫도리가 후들후들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뿌드득 물었던 어금니도 덜덜 떨리고, 주먹에서도 손가락들이 제가끔 힘없이 풀려 나간다. 하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두 눈에 뜨거운 것이 핑 돈다. 그러나 그 순간, 참 희한한 생각이 하나 뒤통수를 갈기고 지나갔다.
“옳지!” 삼바우는 궁둥이를 탁 치고, 고의춤을 불끈 추켜올렸다. “좋은 수고말고!” 얼른 닻줄을 풀어 배 안에 던지고, 가볍게 몸을 날렸다. 그리고 후닥닥 노를 잡고 마구 물을 휘젓는다. 깜짝 놀란 배는 어지럽게 흔들리다가 머리를 불끈 물 위로 쳐든다. 삼바우는 아랫입술을 질끈질끈 깨물며 있는 힘을 다한다. 이마에 기름 같은 땀이 끈적끈적 내배인다. 배는 자세를 가다듬고 신나게 내닫는다.
ⓑ강 길 을 끊어 버리고 만 것이다. 손님도 태우지 않고 부리나케 떠나는 배를 보자, 두 사람은 눈을 휘둥그레 가지고 달려오며 냅다 고함을 지른다. “여보! 아 여보오――” “여기 탈 사람 있소! 좀 기다리쇼!” 그러나 삼바우는 입언저리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혀끝으로 씩 핥으며 고소하게 웃는다. ㉣어디 탈 테면 한번 타 보지, 흥! 콧방귀를 팡 뀌어 준다.
“아, 저놈의 영감쟁이가 돌았나? 우쨌노?” “아, 이리 빨리 배를 안 갖다 댈 끼가?” 두 사람은 얼굴이 빨개 가지고 주먹으로 삿대질을 해쌓는다. 삼바우는 이만저만 통쾌하지가 않았다. 자기에게도 이런 용기가 있었는가 싶으니 스스로 놀랍기도 했다. 안 되지, 안 돼, 안 되고말고. 마을에서 나룻배를 만들 때는 마을 사람들 편리 하라고 만들었지, 누가 저거 자식 잡아가라고 만든 줄 아나? ㉤흥! 안 되지 안 돼. 그러나 삼바우는 차츰 술이 깨는 듯 오스스 떨리어 왔다.-하근찬, 「나룻배 이야기」
[22~27]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한 해의 꽃잎을 ㉠며칠만에 활짝 피웠다 지운
벚꽃 가로 따라가다가
미처 제 꽃 한 송이도 펼쳐 들지 못하고 멈칫거리는
늦된 그 나무 발견했지요.
들킨 게 부끄러운지, 그 나무
시멘트 개울 한 구석으로 비틀린 뿌리 감춰놓고
앞줄 아름드리 ⓐ그늘 속에 반쯤 숨어 있었지요.
봄은 그 나무에게만 더디고 더뎌서
꽃철 이미 지난 줄도 모르는지,
그래도 여느 꽃나무와 다름없이
가지 가득 매달고 있는 멍울 어딘가 안쓰러웠지요.
늦된 나무가 비로소 밝혀드는 꽃불 성화,
환하게 타오를 것이므로 나도 이미 길이 끝난 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한참이나 거기 멈춰 서 있었지요.
산에서 내려 ㉡두 달거리나 제자릴 찾지 못해
헤매고 다녔던 저 난만한 봄길 어디,
늦깎이 깨달음 함께 얻으려고 한나절
나도 병든 그 나무 곁에서 서성거렸지요.
이 봄 가기 전 저 나무도 푸릇한 잎새 매달까요?
무거운 청록으로 여름도 지치고 말면
불타는 소신공양 틈새 가난한 소지*,
저 나무도 가지가지마다 지펴 올릴 수 있을까요?-김명인, 「그 나무」
(나)
대패로 깎아낸 자리마다 무늬가 보인다
희고 밝은 목질 사이를 지나가는
어둡고 딱딱한 나이테들
이 단단한 흔적들은 필시
겨울이 지나갔던 자리이리라
꽃과 잎으로 자유로이 드나들며 숨쉬던
모든 틈과 통로가
일제히 딱딱하게 오므리고
한겨울 추위를 막아내던 자리이리라
두꺼운 껍질도 끝내 견디지 못하고
거칠게 갈라졌던 자리이리라
뿌리가 빨아들인 맑은 자양들은
물관 속에서 호흡과 움직임을 멈추고
나무 밖의 거대한 힘에 귀기울였으리라
추위의 난폭한 힘은 기어코 껍질을 뚫고 들어가
수액 깊이 맵게 스며들었으리라
수액을 찾아 들어왔던 햇빛과 공기들은
그 자리에서 ㉢겨우내 얼었다가
독한 향기와 푸르고 진한 빛으로 익어갔으리라
해마다 얼마나 많은 잎과 꽃들이
이 무늬를 거쳐 ㉣봄에 이르렀을까
문틈인지도 직각의 모서리인지도 모르고
지느러미처럼 빠르고 날렵한 무늬들은
가구들 위를 흘러다니고 있다-김기택, 「나무」
(다)
노인이 꽃나무를 심으심은 무슨 보람을 위하심이오니까. 등이
곱으시고 숨이 차신데도 그래도 꽃을 가꾸시는 양을 뵈오니, 손수
공들이신 가지에 붉고 빛나는 꽃이 맺으리라고 생각하오니, 희고
희신 나룻이나 주름살이 도리어 꽃답도소이다.
나이 이순을 넘어 오히려 여색을 기르는 이도 있거니 실로
누추하기 그지없는 일이옵니다. 빛깔에 취할 수 있음은 빛이
어느 빛일는지 청춘에 맡길 것일는지도 모르겠으나 쇠년(衰年)에
오로지 꽃을 사랑하심을 뵈오니 거룩하시게도 정정하시옵니다.
봄비를 맞으시며 심으신 것이 언제 바람과 햇빛이 더워 오면
고운 꽃봉오리가 촛불 켜듯 할 것을 보실 것이매 그만치 노래의 한 계절이 헛되이 지나지 않은 것이옵니다. 노인의 고담한 ⓑ그늘에 어린 자손이 희희(戱戱)하며 꽃이
피고 나무와 벌이 날며 닝닝거린다는 것은 여년(餘年)과 해골을
장식하기에 이렇듯 화려한 일이 없을 듯하옵니다.
㉤해마다 꽃은 한 꽃이로되 사람은 해마다 다르도다. 만일
노인 백 세 후에 기거하시던 창호가 닫히고 뜰 앞에 손수 심으신
꽃이 난만할 때 우리는 거기서 슬퍼하겠나이다. 그 꽃을 어찌
즐길 수가 있으리까. 꽃과 주검을 실로 슬퍼할 자는 청춘이요
노년의 것이 아닐까 합니다. 분방히 끓는 정염이 식고 호화롭고도
홧홧한 부끄럼과 건질 수 없는 괴롬으로 수놓은 청춘의 웃옷을
벗은 뒤에 오는 청수하고 고고하고 유한(幽閑)하고 완강하기
학과 같은 노년의 덕으로서 어찌 주검과 꽃을 슬퍼하겠습니까.
그러기에 꽃이 아름다움을 실로 볼 수 있기는 노경*에서일까
합니다. -정지용, 「노인과 꽃
[28~31]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그날에 길동이 도적을 데리고 분부하여 왈, “내 금일 절에 가 ㉠여차여차하여 모든 중을 결박하거든 너희 등은 그때를 당하여 일을 행하라.” 하니, 모든 도적이 영을 기다리더라. 이때 길동이 수십 종자를 데리고 해인사에 올라가 노승더러 왈, “전에 백미를 보내어 술과 밥을 갖추라 하였더니 어찌하였는고?” 승려들이 고왈, “이미 준비하였사오니 처분을 내리소서.”
길동 왈, “전에 들으니 이 절 뒤의 풍경이 거룩하다 하니, 너희와 더불어 종일 즐기고자 하니 하나도 빠지지 말고 일제히 모이라.” 하니, 승려들이 어찌 이런 흉계를 알리오. 상하노소 없이 다 절 뒤 시내에 벌여 앉으니, 길동이 차례로 권하여 즐기며 웃고 잡담 하다가 가만히 소매로부터 모래를 내어 입에 넣어 씹더니, 모래 깨무는 소리에 승려들이 놀라 사죄하거늘, 길동이 왈칵 성내어 왈, “너희 등이 나를 쉬이 알고 음식의 부정함이 이렇듯 하니 통탄치 아니하리오.” 말이 끝나자 모든 승려를 일시에 다 결박하라 하며 호령하되, “내 본관에 들어가 이 연유를 고하고 각별히 엄벌하리라.” 하니, 승려들이 몹시 놀라 넋을 잃고 애걸할 따름이로다. 이때에 도적들이 절 어귀에 매복하여 있다가 모든 승려 결박함을 듣고 달려들어 재물을 제 집 재물같이 실어 나르니, 승려들이 다만 눈으로 보며 입으로 소리만 지를 따름일러라.
절의 나무하던 놈이 작은 방에서 그릇을 옮겨 싣다가, 도적이 우마를 가지고 들이닥쳐 창고를 열고 재물을 훔쳐 가는 광경을 보니라. 담을 넘어 도망하여 합천 읍내에 들어가 도적 수백 명이 와 절 재물을 훔쳐 가는 ㉡사연을 고하니, 합천 군수가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즉시 관에 딸린 관리들과 읍의 노소 인민을 징발하여 급히 ⓐ해인사로 몰아가니라.
이때 도적이 재물을 훔쳐 우마에 싣고 산골짜기 소로로 가려 하거늘, 길동이 이르되, “조금도 의심치 말고 남쪽 대로로 가라.” 하니, 도적들이 질색 대왈, “관군이 곧 가까이 쫓아오면 잡힐까 하나이다.” 길동이 크게 웃고 이르되, “너희는 젖내 나는 어린아이라. 어찌 나의 깊은 소견을 알리오. 두려워 말고 남쪽 대로로 가라. 내 관군을 북쪽 으로 가게 하리라.” 도적들이 이 말을 듣고 남쪽 대로로 가거늘, 길동이 도로 법당에 들어가 중의 장삼을 입고 송낙을 쓰고 높은 뫼에 올라 보니 관군이 몰려 오거늘, 크게 소리하여 왈, “저 관군은 도적이 북으로 갔으니 북쪽 소로로 쫓아가 잡게 하라.” 하고 북쪽 소로를 가리키거늘, 관군이 그리로 쫓아가니라. 길동이 그제야 산에서 내려와 가만히 술법을 행하여 먼저 마을 어귀에 돌아오니, 이윽고 도적이 수천 우마를 몰고 들어와 길동을 향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사례 왈, “장군의 신기한 술법과 거룩한 재주는 귀신도 측량치 못하리로소이다.”
길동이 웃어 왈, “대장부 그만한 재주 없으면 어찌 장사라 칭하리오.” 하고 잔치를 즐긴 후에, 훔쳐 온 재물을 헤아려 본즉 수만금일러라. 모든 도적에게 각기 물품을 내려 주고 마을 어귀에 별호를 활빈당 이라 칭하고 하령하여 왈, “조선 팔도로 다니며 불의한 재물을 탈취하고, 가난하여 의지할 곳 없는 자거든 재물 주어 구제하되 성명을 통치 말고, 열읍 수령 중 백성을 착취하여 얻은 자의 재물을 탈취하라.”
[중략 부분의 줄거리] 팔도에 혼란을 초래한 길동은 병조 판서를 제수받아 서자로서의 한을 풀고, 활빈당과 함께 조선을 떠난다.
차설. 길동이 대의를 두고 일일 연습하니, 무예가 정숙하여 마군이 십만이고 보군이 십만일러라. 일일은 여러 장수들을 모아 이르되, “내 들으니 율도국이 살림이 넉넉하고 국세가 대국이나 다름이 없다 하니, 여러 군사들의 뜻이 어떠하뇨?” 장수들이 응하여 왈, “소장의 평생 소원이로소이다. 빨리 싸워 성공케 하옵소서.” 길동이 즉시 군사를 일으켜 물밀듯 쳐들어가니 향하는 곳마다 대적할 이 없더라. 각설. 수월 만에 칠십여 성을 항복받고 율도국 왕에게 격서를 전하니라. 율왕이 뜯어 보니 하였으되,
“조선국 활빈당 장수 홍길동은 율왕에게 말하느니, 대저 나라는 한 사람의 그릇이 아니라. 이러하므로 성탕이 걸을 치시고 무왕이 주를 치시니, 예부터 정벌이 천리에 떳떳한 일인 고로, 내 의병을 일으켜 한 북소리에 칠십여 성을 항복받아 위엄을 뵈나니, 율왕은 빨리 나와 좌우를 결단하라. 만일 항복하면, 조상 향화를 끊기게 하지 아니하고 자손까지 부귀를 누리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천명을 거역하는 것이라 옥석을 구별 않고 모두 처치할 것이니, 재삼 생각하여 하라.” 하였더라.
왕이 문무제신을 모아 의논하여 왈, “무명 소적이 이렇듯 방자하니, 뉘 능히 내 근심을 덜리오?” 하되, 제신이 아뢰어 왈, “대왕이 한때의 분을 일으켜 대적했다가 도리어 패하오면 후세에 부끄러움을 면치 못하오려니와, 성을 굳게 닫고 나가지 아니하시면 제 스스로 물러갈까 하나이다.” 왕이 크게 노하여 왈, “적병이 ⓑ성 아래까지 미쳤거늘 어찌 저희 스스로 물러가기를 기다리리요.” 하고 군사를 징발하여 친히 대적하더라.
-「홍길동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