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글을 읽을 때 글에 사용된 개념 간의 관계를 분석하는 것은 글에 담긴 개별적 내용뿐만 아니라 글 전체의 논리적 구조를 함께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항 대립 구조는 두 가지 개념을 짝지어 상반되는 성격으로 대립시키는 것으로, 글의 구조를 완성하고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다. 독자가 글을 읽을 때 어휘나 문장과 같은 글의 개별 요소의 의미를 분석하여 저자가 설정한 이항 대립 구조를 파악하면, 글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항 대립 구조를 단서로 저자의 의도를 추론할 수도 있다.
이렇게 이항 대립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저자의 의도를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저자의 의도에서 벗어나 글의 의미를 확장하는 읽기 방법이 해체적 읽기이다. 해체적 읽기에서는 이항 대립되는 개념들 사이에 저자가 어느 쪽의 개념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위계가 필연적으로 형성된다고 보고, 이 위계의 모순을 밝힌다. 해체적 읽기는 글을 다음과 같은 세 단계로 나누어 분석한다. 첫 번째 단계는 이항 대립 구조를 확인하는 것으로 독자는 글에서 대립되어 있는 두 가지 개념의 짝을 찾아야 한다. 글 안에 흩어져 있는 어휘나 문장과 같은 글의 개별 요소를 두 개의 대립군으로 분류함으로써, 그 대립 관계가 글의 구조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이항 대립 구조임을 식별해 내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이항 대립 구조 속의 위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독자는 글에서 어휘나 문장 등이 쓰인 맥락을 분석하여 저자가 긍정적으로 여기는 개념과 부정적으로 여기는 개념 사이의 위계를 확인해야 한다. 마지막 단계는 앞서 파악한 위계의 모순을 밝히는 것이다. 독자는 글에 부정적으로 나타난 개념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저자가 설정한 위계가 절대적이지 않음을 파악할 수 있다. 혹은 글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한 바와 실제로 글이 의미하고 있는 바가 어긋나는 지점을 포착하여 위계의 모순을 파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글의 의미가 하나로 정해지지 않으며 글은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자는 해체적 읽기를 통해, 글의 의미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변할 수 있음을 파악한다. 이를 바탕으로 독자가 저자의 의도대로 해석한 내용이 언제나 객관적이고 타당한 것은 아니며,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또한 독자는 글을 저자에 의해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의미가 확장되는 공간으로 받아들여, 글을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능동적인 독자로 거듭나게 된다.
[4~ 9]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러셀은 세계를 객관적 실재로 이해했다. 러셀에 따르면 명제는 세계에 존재하는 사실을 문장이라는 형식으로 드러내는 언어적 표현이다. 러셀은 명제가 그 사실을 올바르게 기술하고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참과 거짓을 결정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명제가 세계와 대응되면 그 명제는 참이며 명제가 세계와 대응하지 않으면 거짓이라고 하였다. 러셀은 과학이나 윤리 등 서로 다른 영역도, 명제로 표현된 것과 세계와의 대응 여부로 참과 거짓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공통의 평가 방식을 지닌다고 보았다.
러셀은 명제를 분석해 세계와의 대응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진리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진리에 대한 지식이란 세계와의 대응 여부에 대해 판단하여 명제가 참임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명제에 있는 여러 사실들의 관계를 세계의 사실 관계와 일치하게 판단한 경우 그 판단은 참이다. 러셀은 세계에 대한 앎인 ㉠지식을 진리에 대한 지식과 사물에 대한 지식으로 나누었는데, 이때 진리에 대한 지식은 사물에 대한 지식이 바탕이 된다.
사물에 대한 지식은 세계에 그 대상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러셀은 사물에 대한 지식을 다시 직접적 인식에 의한 지식과, 기술에 의한 지식으로 구분한다. 이때 직접적 인식에 의한 지식은 대상을 직접적으로 대면함으로써 우리의 감각에 주어지는 감각 자료에 대한 지식이 대표적인데, ‘장미’와 같은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은 물론, ‘붉음’ 같은 속성이나 ‘다양성’ 같은 관념 등도 직접적 인식의 대상이 된다. 러셀은 직접적 인식에 의한 지식을 실제 경험을 통해 지각한다는 점에서 가장 확실하고 기초적인 지식으로 ⓑ보았다. 러셀은 명제를 분석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모든 지식을 가장 확실한, 직접적 인식에 의한 지식으로 환원하고자 하였다.
기술에 의한 지식은 대상을 직접적으로 대면하지 않았더라도 기술에 의해 대상을 간접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때 기술은 어떤 존재하는 대상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서술하는 말이다. 기술에 의한 지식은 그 기술에 부합하는 대상의 존재를, 우리가 직접적으로 인식한 것에서부터 추론해 아는 것이라는 점에서 직접적 인식에 기반하며, 우리의 지식이 개인적 경험의 한계를 ⓒ넘을 수 있게 한다. 또한 기술에 의한 지식은 직접적 인식에 의한 지식과 달리 대상을 직접적으로 대면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전달될 수 있다.
러셀은 지시 대상이 없는 기술이 포함된 명제의 경우에도 명제의 분석을 통해 명제의 참과 거짓이 결정될 수 있다고 보았다. 가령 ㉮‘현재 프랑스의 왕은 남성이다.’라는 명제를 보면 프랑스는 현재 군주제가 아니므로 ‘현재 프랑스의 왕’이라는 기술은 지시하는 대상이 없다. 이럴 경우, 러셀은 지시하는 대상이 없는 기술이 포함되면 명제 자체가 거짓이라고 봄으로써 ‘현재 프랑스의 왕은 남성이다.’라는 명제의 참과 거짓이 결정될 수 있다고 보았다.
(나) 리오타르는 세계가 다원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세계를 이질적인 언어 게임이 공존하는 장으로 이해하였다. 리오타르는 절대적 원리나 권위에 의해 진리가 정당화되는 것을 부정하며, 어떤 하나의 보편적 체계로 세계를 온전하게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리오타르는 언어에 주목하여 세계를 새롭게 이해하고자 하였다.
리오타르는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는 상황을 언어 게임이라고 하였다. 이는 게임마다 임의로 만들어지는 고유의 규칙이 있듯이, 언어를 사용하는 상황에서도 언어 사용자들의 암묵적 계약에 의한 고유의 규칙이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언어는 그 사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므로 언어 게임은 과학적 언어 게임, 윤리적 언어 게임 등 그 종류가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는 서로 다른 언어 게임을 수행하는 집단들이 각자의 문화를 지닌 채 공존하고 있는 장이라고 볼 수 있다. 리오타르는 서로 다른 언어 게임 간에는 공약불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보았는데, 공약불가능성이란 공통적인 척도로 묶일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질적인 언어 게임은 공통된 규칙이 존재하지 않고 공통된 기준에 ⓓ따라 평가하거나 상호 비교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언어 게임 간의 합의를 이루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리오타르는 언어 게임 간의 이질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언어 게임 간의 합의가 어렵다는 것은 문장 우주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문장 우주 안에는 발신자, 수신자, 지시되는 대상,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 네 가지 구성 요소 간의 관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문장 우주는 다의성을 ⓔ지닌다. 가령 ‘정의’라는 언어 기호는 발신자, 수신자가 누구이고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등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리오타르의 시각에서 이 네 가지 요소들은 문장 우주 안에서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서로 다른 언어 게임 간에 합의를 이루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일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리오타르는 각기 다른 언어 게임에 속한 ㉡지식들이 공통된 기준에 의해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한 지식이 속한 언어 게임의 규칙을 다른 지식이 속한 언어 게임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고 보았다. 지식에는 대표적으로 서사적 지식과 과학적 지식이 있다. 서사적 지식은 신화를 통해 자연의 상태를 설명하거나 공동체 구성원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것 등을 이르고, 과학적 지식은 증명을 통해 진술의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 지식을 이른다. 이때 서사적 지식과 과학적 지식은 각 지식이 속한 언어 게임의 규칙을 따른다. 이는 서사적 지식과 과학적 지식 중 어느 하나가 다른 것보다 더 우선시되거나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10∼1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카메라 등의 광학 기기에 쓰이는 볼록 렌즈는, 물체에서 반사되어 렌즈로 입사한 광선들을 수렴시킨다. 물체 표면의 한 점인 물체점에서 렌즈로 입사한 여러 광선이 굴절하여 수렴하는 점을 상점이라고 한다. 렌즈로 입사한 모든 광선이 하나의 상점에 수렴한다면 상은 뚜렷한 점의 형태로 맺히지만, 하나의 상점에 수렴하지 않으면 상이 흐려지거나 일그러져 보이는 수차 현상이 ⓐ발생한다. 특히 물체점이 광축에서 멀리 떨어지면 렌즈에서 굴절된 광선들은 서로 다른 두 상점에 수렴하게 되어 흐릿한 상을 맺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비점 수차에 ⓑ해당한다.
광축은 렌즈의 중심을 지나면서 렌즈 면에 수직인 가상의 직선이다. 물체점이 광축 위에 있고, 렌즈가 회전 대칭성을 지니며, 광선들이 하나의 상점에 수렴할 경우 뚜렷한 상이 맺힌다. 이때 회전 대칭성이란 광축을 중심으로 회전시켜도 항상 원래의 형태와 겹쳐지는 성질이다. 물체점으로부터 렌즈로 입사한 광선들의 집합인 광선 다발은 물체점을 꼭짓점으로 하는 원뿔 형상을 띤다. 렌즈 중심으로 ⓒ향하는 광선인 주광선은 광선 다발을 대표하는데, 주광선은 광축을 따라 렌즈 중심으로 입사하고 광선 다발의 형상은 광축을 중심으로 회전 대칭성을 지니게 된다. 이에 따라 주광선을 포함하는 평면들로 광선 다발을 나누었을 때, 광선들의 입사 양상이 어떤 평면에서든 동일해진다. 이때 각 평면에서의 광선의 굴절 양상 또한 서로 동일해져, 전체 광선 다발은 광축 위에 있는 하나의 상점에 수렴하게 된다.
반면 물체점이 광축에서 멀리 벗어나면 주광선은 광축을 따라 입사하지 않게 되며, 광선 다발의 형상은 광축을 기준으로 회전 대칭성을 보이지 않게 되어 비점 수차가 발생한다. 이때 광선 다발의 수렴 양상을 살필 수 있게 하는 평면이 자오면과 구결면이다. 자오면은 광축과 주광선을 포함하는 단 하나의 평면이며, 광축을 중심으로 물체점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를 드러낸다. 구결면은 자오면과 수직인 평면으로, 광축을 포함하지 않으며 주광선을 포함하는 평면이다. 자오면 위에 있는 광선들인 자오 광선과 구결면 위에 있는 광선들인 구결 광선은 입사 양상이 다르며, 이에 따라 굴절 양상도 다르다. 이 때문에 광선들이 서로 다른 위치에 수렴하게 되는데, 자오 광선이 수렴하는 점을 자오 상점, 구결광선이 수렴하는 점을 구결 상점이라고 한다. 이때 자오 상점이 구결 상점보다 렌즈의 중심까지의 거리가 더 가깝다.
자오 상점과 구결 상점 사이의 거리인 비점 격차가 커질수록 비점 수차는 심해진다. 비점 격차는 물체점에서 광축까지의 거리의 제곱, 즉 물체점에서 광축까지 수직으로 그은 선의 길이의 제곱에 비례한다. 자오 상점부터 구결 상점까지의 임의의 지점에서 맺히는 상의 형상은, 같은 지점에서 광선 다발을 광축에 수직인 면으로 잘랐을 때 그 단면의 형상과 ⓓ동일하다. 자오 상점에서 맺히는 상을 일차상이라고 하고, 구결 상점에서 맺히는 상을 이차상이라고 한다. 일차상과 이차상은 모두 선분의 형상인데, 일차상은 구결면 위에 놓여 주광선과 수직 관계를 이루고, 이차상은 자오면 위에 놓여 주광선과 수직 관계를 이룬다. ㉠이때 일차상과 이차상은 서로 수직이다. 비점 격차가 커질수록 일차상의 길이와 이차상의 길이는 길어진다. 일차상과 이차상 사이에 맺히는 상의 대부분은 타원의 형상을 띠지만, 중간 부근에 원형을 띠는 유일한 지점이 있는데 이 지점에서의 상을 최소 착란원이라고 한다. 최소 착란원은 광선들이 하나의 상점에 수렴할 때 형성되는 상과 형태가 가장 ⓔ유사하며, 일차상과 이차상 사이에 맺히는 상 중 가장 뚜렷하다. 비점 격차가 클수록 최소 착란원은
크기가 커지면서 흐려진다.
[14~ 17]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오늘날 하나의 건물 안에 여러 세대와 점포 등이 공존하는 집합건물이 보편화되었다. 민법의 개별 소유와 공동 소유의 내용에 대한 규정만으로는, 하나의 건물 안에서 개별적으로 소유하는 공간과 공동으로 소유하는 공간이 공존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조정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집합건물법이 제정되면서 구분소유권이라는 권리를 통해 집합건물 내의 다양한 권리관계를 명료하게 하여 공동생활을 합리적으로 규율할 수 있게 되었다.
구분소유권은 전유부분을 개별 소유의 대상으로 삼는 소유권을 의미하는데, 전유부분은 건물 내에서 구조상 독립성과 이용상 독립성을 모두 갖춘 부분이고 전유부분 이외의 건물 부분은 공용부분이라고 한다. 이때 구조상 독립성이란 각 건물 부분이, 바닥이나 천장, 벽, 출입문과 같이 건물을 구성하고 있지만 쉽게 이동되거나 제거될 수 없는 부분에 의해, 공용부분이나 다른 구분소유자들의 전유부분과 차단된 것을 말한다. 이용상 독립성이란 해당 부분이 다른 전유부분을 통하지 않고도 공용부분이나 외부로 출입할 수 있어, 독립된 세대, 점포 등으로 사용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구분소유권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구분 행위가 필요하다. 구분 행위란, 건물을 분양하는 사람이 건물의 특정 부분을 구분하여 별개의 소유 대상으로 삼으려는 의사를 객관적으로 외부에 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분 행위는 분양 계약, 건축물대장 기재, 등기 등 다양한 방식이 가능하며, 전유부분에 대한 구분 행위가 있으면 그 건물에 대해 구분소유권이 성립한다.
공용부분에는 복도, 옥상, 공동 현관 등의 건물 부분과, 엘리베이터와 같은 건물의 부속물이 있다. 공용부분은 구분소유자들이 공유한다. 구분소유자가 전유부분을 소유함으로써 자동으로 얻게 되는 권리가 바로 공용부분에 대한 지분이다. 공용부분의 지분은 해당 구분소유자의 전유부분의 면적이 전체 전유부분의 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결정되며, 공용부분으로 인한 수익과 비용 역시 공용부분의 지분 비율에 따른다. 전유부분이 될 수 있는 공간도 규약을 통해 공용부분으로 지정하여 노인정, 공동 휴게 공간 등으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단, 이때는 공용부분이라는 것을 반드시 등기해야 한다.
구분소유권의 주체인 구분소유자는 집합건물의 특성 때문에 개별 소유 대상인 전유부분에 대해서도 권리 행사에 제약을 받는다. 구분소유자는 전유부분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처분할 수는 있지만 건물의 관리 및 사용에 있어서 단체 규율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따라서 건물의 유지에 해가 되는 행위를 하는 것 등은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개별 소유하고 있는 전유부분을 확장하는 것도 건물의 안전을 해치거나 구분소유자 공동의 이익을 침해하면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공용부분의 관리에 대한 의사결정은 원칙적으로 구분소유자들의 결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공용부분의 형태나 기능 등을 변화시키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다만 안전 등을 사유로 긴급한 조치가 필요한 경우에는 구분소유자 개인이 단독으로 훼손된 공용부분을 복구하는 보존행위를 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관리단에 그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전유부분에 하자가 생긴 경우라도, 하자의 원인이 불분명할 때에는 공용부분의 하자로 여기고 구분소유자의 공동책임으로 보아 관리단에 수리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하자가 생긴 원인이 전유부분에 있다는 것이 명확히 밝혀지기 전까지는 누수, 난방 불량 등의 원인을 건물 전체의 구조나 공용 설비 문제로 간주하는 것이다.
구분소유자들의 의사결정은 관리단 집회를 통해 이루어진다. 관리단은 건물에 대하여 구분소유권이 성립되면 구분소유자 전원을 구성원으로 하여 별다른 절차가 없어도 설립된다. 관리단은 집합건물의 공동 관리를 위한 최종 의사결정의 주체이다. 관리단에서 각 구분소유자의 의결권은 규약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전유부분의 면적 비율에 따라 결정된다. 구분소유자 전원은 구분소유자의 지위를 가지는 동안에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구성원이 된다. 관리단에서 적법하게 결의된 사항은 그 결의에 반대한 구분소유자에 대해서도 효력을 미칠 수 있다. 구분소유자가 10인 이상일 때는 관리인을 선임해야 한다. 관리인은 구분소유자일 필요가 없으며, 관리단을 대표해 관리단의 결의 결과를 집행하는 법적 지위를 갖는다.
[18 ~21]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사환아이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당분간 조업을 전면 중단하고 휴무라니…… 그것도 전혀 예고 없이 이 아침에 갑자기.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치뜬 채 예의 ⓐ공고문을 되풀이해 읽었다. 입사 이래 만 이 년 동안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혹심한 불경기라고 쥐꼬리만한 사환 봉급까지 삼십 프로나 에누리하여 지급하는 소동을 벌였던 지난 여름에도 노랭이 사장은, 그러나 조업 자체를 중단 시키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물며 지금은 구정 대목을 눈앞에 두고 있는 때라 공급이 엄청나게 달리는 판인 것이다.
사환아이는 영하의 추위 속에 오들오들 떨며 서 있었다. 정말 이대로 돌아가 버려도 괜찮을까? 견고하게 닫혀져 있는 철제 대문과 그 위에 나붙어 있는 종이쪽을 몇 번이고 새겨 보면서 그녀는 무작정 떨기만 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일종의 안도감 같은 것이 느껴져 왔다. 어쨌든 오늘 근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과히 싫지 않았다. 제대로 난방도 되지 않은 사무실에서 오늘 하루는 또 얼마나 부대낄 것인가. ㉡해묵은 천식을 앓고 있는 그 늙다리 총무부장은 아마도, 서너 시간마다 탄불을 갈아 넣으라고 성화일 것이다. 그런다고 십구공탄 난로가 얼마나 더 더워질 것인가. 필경에 고물 석유난로까지 꺼내다 놓고는 기름을 사와라, 심지를 소제하라 한바탕 난리를 피울 것이었다.
정말 지겨운 일과들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런 따위에서 문득 풀려난 것이다. 그리하여 사환애는, 이 아침의 돌연한 사태가 적어도 당장에는 그다지 해로울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기회에, 직장에 나가고 있는 친구들이나 죄 순방해 보기로 하자,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고는 오랜만에 영화라도 한 프로 감상해야지. 아니야, 어느 극장에서던가,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리사이틀을 하고 있다지. 그래, 명자나 수연일 불러내서 거길 가야지. 고 계집애들도 미치게 좋아할 거야…….
갑자기 즐거워진 마음으로 그녀는 돌아섰다. 그러고는 막 발을 떼 놓으려다 말고 멈추어 섰다. 타과 소속의 사환애들 서넛이 한꺼번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영희 너, 왜 그러구 있니?”
그들 중의 하나가 말했다.
“벌써 퇴근하는 건 아닐 게구 말야.”
영희는 대답 대신 문제의 공고문을 코끝으로 가리켜 보였다. 그 얼굴엔 즐거움이 가득 넘치고 있었다.
공고문을 본 사환애들은 영희가 그랬던 것처럼 멍청한 표정들을 지은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멀거니 쳐다보면서, 가쁜 호흡들을 가라앉히느라 색색거렸다.
“얘, 참 별일이다. 그지?”
영희의 보충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들 중 하나가 말하고 갑자기 헤헤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 노랭이 사장님께서 날씨 탓으로 그만 헤까닥한 건 아닐까?”
기묘하게 일그러졌던 표정들을 풀고 그들은 환하게 웃었다.
“정말 별일이다 얘. 그러니깐 우리더러 당분간 집에서 푹 쉬라, 그런 뜻이지?”
“야, 푹 쉬는 거 좋아하지 마!”
여자들의 수다 속에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던 영업과 소속의 남자 사환애가 퉁명스레 끼어들었다.
“왜에?”
여자애들이 물었다.
“이건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야. 생각들 해보라구. 이건 무슨
휴가 같은 게 아니란 말야. 당분간 조업을 중단한다는 얘긴데,
그러면 결국 회사 문을 처닫는단 소리 아냐?”
“그래 아까 수위장 아저씨도 그렇게 말했어.”
영희가 고개를 조악거렸다.
(중략)
모든 문제가 확연하게 밝혀진 것은 다섯 시가 훨씬 넘어서였다. 그리고 더 자세한 내용들이 전해진 것은, 그날 저녁의 회사 앞 다방이나 주점, 또는 귀가하는 만원 버스 안에서였다. 사장은 결코 그러한 지시를 한 적이 없으며, 또한 일정이 너무나 바빴기 때문에 외유 기간 동안 본가로도 국제전화 한 통 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당일 밤의 숙직 사령 한비서는 누구로부터 그런 터무니없는 전화를 받았던가? 실상 통화를 한 장본인은 수위장 김씨였음이 밝혀졌다. 그는 오밤중에 걸려 온 국제전화를 통해 사장이라는 말만 듣고는 부리나케 한비서를 깨웠노라고 말했다. 그러나 난처하게도 한비서는 통화를 할 수 없는 상태였다. 통금이 가까워서야 술이 억병으로 취해서 기어든 그는 그 길로 곧장 잠에 곯아떨어져 버렸기 때문에 김씨가 아무리 흔들어 보아도 깨어날 기미가 영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남의 사정 잘 헤아릴 나이가 된 수위장 김씨는 하는 수 없이 스스로 비서 행세를 하면서 어물어물 통화를 했다. 결정적인 잘못은 거기서 빚어졌던 것이다. ㉣경황없이 통화를 끝낸 그는 식은땀이 촉촉하게 배어난 손으로 내용을 메모해 뒀다. 그러곤 새벽녘에야 간신히 한비서를 깨우는 데 성공하여 그걸 전했노라고 실토했다.
―내가 귀국할 때까지 모든 일을 중지할 것. 사장.
이것이 한비서가 받은 ⓑ메모의 전부였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당분간 일체의 조업을 중단하고 휴무함. 사장백’이라는 공고문이 예의 녹슨 철제 대문 위에 나붙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굳이 얘기할 필요조차도 없는 일이다. ㉤이 대목에서만은 다들 쓴 입맛만 다셨을 따름이었다. 어쨌든 회사는 당장 다음날부터 정상 업무를 한다고 공시되었지만, 그러나 한비서와 부사장의 인책 사임의 소문과 더불어 회사의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전사원들의 마음을 어둡게 사로잡았다. 그 불안감은 이제야말로 보다 확실한 것으로서 정말 실업의 위기가 몰아닥칠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저 어처구니없는 사태로 하여 회사가 그간에 입은 손실이 너무나 심각한 것이었으므로 적어도, 당장에는 회사가 이를 타개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소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동하, 「모래」 –
[22~ 26]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으스름히 안개가 흐른다. 거리가 흘러간다. 저 전차, 자동차, 모든 바퀴가 ㉠어디로 흘리워 가는 것일까? 정박할 아무 항구도 없이, 가련한 많은 사람들을 싣고서, 안개 속에 잠긴 거리는,
거리 모퉁이 붉은 포스트 상자를 붙잡고 섰을라면 모든 것이 흐르는 속에 ㉡어렴풋이 빛나는 가로등, 꺼지지 않은 것은 무슨 상징일까? 사랑하는 동무 박(朴)이여! 그리고 김(金)이여! 자네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끝없이 안개가 흐르는데,
‘새로운 날 아침 우리 다시 정답게 손목을 잡아 보세’ 몇 자 적어 포스트 속에 떨어뜨리고, 밤을 새워 기다리면 금휘장(金徽章)에 금단추를 삐었고 거인처럼 찬란히 나타나는 배달부, 아침과 함께 즐거운 내림(來臨),
이 밤을 하염없이 안개가 흐른다.
윤동주, 「흐르는 거리」
(나)
해거름녘 쓸쓸한 사람들과 흐르던
따뜻한 강물이 내게로 왔네
봄 눈 파릇파릇한 숲길을 지나
아득한 강물이 내게로 왔네
이십도의 따뜻하고 해맑은 강물과
이십도의 서늘하고 아득한 강물이
㉣서로 겹쳐 흐르며 온누리 껴안으며
삼라의 뜻을 돌아 내게로 왔네
사흘 낮 사흘 밤 잔잔한 강물 속에
어여쁜 숭어떼 미끄럽게 춤추고
부드러운 물미역과 수초 사이에서
적막한 날들의 수문이 열렸네
㉤늦게 뜬 별 둘이 살 속에 박혔네
달빛이 내려와 이불로 덮었네
저물 무렵 머나먼 고향으로 흐르던
따뜻한 강물이 내게, 내게로 왔네
외로운 사람들의 낮과 밤 지나
기나긴 강물이 내게, 내게로 왔네
사십도의 따뜻하고 드맑은 강물 위에
열두 대의 가야금소리 깃들고
사십도의 서늘하고 아득한 강물 위에
스물네 대의 바라춤이 실렸네
그 위에 우주의 동행이 겹쳤네
고정희, 「따뜻한 동행」
(다)
집의 남쪽 허물어진 담 그늘에 난초가 있어 싹이 돋아났다. 무너진 흙이 덮고 풀 덩굴이 둘러 있어 지나가는 사람이 난초인 것을 알지 못했는데, 주인이 동자를 시켜 풀 덩굴을 치우고 흙을 거두어내서 흙단을 만들어 높이며 귀하게 여겼다.
객이 곁에 있어 웃으면서 말하기를,
“당신이 난초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마침 난을 해롭게 하는 것입니다. 대저 이 난이란 것은 오로지 흙더미 가운데서 살고 풀 덩굴 곁에서 자라며, 가려 그늘진 곳에서 그윽이 빼어나니, 이런 까닭으로 무성해지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무너진 흙을 평탄하게 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살게 하고, 우거진 풀을 베는 것으로 말미암아 자라게 하고, 우거져 그늘진 것을 베는 것으로 말미암아 나타내게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귀함이 있는 곳에는 이름이 반드시 따라 다니는 것이니, 장차 이름 있는 사람이 말하기를, ‘이것은 상서롭고 향기로운 풀이다.’고 하면서 손을 뻗어 만지려 하고 코를 대어 냄새를 맡으려 할 것이니, 마침내 그 천성(天性)을 없애는 것이니 어찌 난의 행복이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주인이 말하기를,
“비록 그러하나, 이 난의 됨됨이는 풀과 다르니, 오히려 이 난에서 풀 덩굴의 울창함으로 덮이게 하면 마침내 기이함을 볼 수 없게 되니 이것이 또한 난의 행복인가?”라고 하니, 객이 또 웃으면서 말하기를,
“무슨 걱정인가. 대저 이것은 무릇 오직 거처한 곳이 그윽한지가 오래되었으니, 장차 거의 나타나는 것은 바람이 번식하게 하고 비가 윤택하게 하며, 뿌리는 굳어지고 잎은 강해집니다. 바야흐로 가을에 서리와 이슬이 내려 온갖 풀들이 말라 죽으나, 당신의 정원에는 어리고 푸른 것으로 있고, 비로소 겨울의 싸라기눈이 이미 내려 모든 기운이 폐색해지나, 그대의 방에는 검고 향기로운 것이 있을 것이니, 비록 그 기이함을 보지 않고자 해도 그럴 수 있는가? 무릇 물건이 그윽하게 숨음과 나타남에는 때가 있는데, 그대는 어찌 조급히 서두르는가?” 라고 하였다. 이에 주인이 객을 돌아다보며 크게 탄식하고 동자를 가리켜 말하기를,
“멈추어라. 대저 저 사람의 말은 거의 통달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남유용, 「난설」
[27~ 30]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어와 청춘 소년들아 백발(白髮)보고 웃지마라
덧없이 가는 세월 넨들 매양 젊을소냐
적은덧 늙었으니 공(空)된 줄 알거니와
소문없이 오는 백발 귀밑이 반백(半白)이라
청좌없이 오는 백발 털끝마다 점점 흰다
이리저리 혜여 보니 오는 백발 검을소냐
위풍으로 제어하면 겁내야 아니올까
기운으로 쫓아보면 못이기어 아니올까
꾸짖어 물리치면 무색(無色)하야 아니올까
욕하야 거절하면 노여하야 아니올까
ⓐ긴 창으로 찔러보면 무서워 아니올까
드는 칼로 내쳐 치면 혼이 나서 아니올까
휘장으로 가려볼까 방패로 막아볼까
소진(蘇秦) 장의(張儀) 구변으로 달래면 아니올까
좋은 음식 갖초 차려 인정 쓰면 아니올까
할 수 없다 저 백발은 사람마다 겪는고나
(중략)
육십갑자(六十甲子) 곱아보니 덧없이 돌아온다
사시절 살펴보니 덧없이도 지나간다
늙을사록 분한 마음 정할 수 바이 없다
편작(扁鵲)이 불러다가 늙는 병 고칠손가
㉡불사약 얻어다가 쇠하지 않게 하야볼까
주사야도(晝思夜度) 생각하나 늙을 밧 할 수 없다
어와 설운지고 또 한말 들어 보소
꽃이라도 떠러지면 오는 나비 돌아 가고
나모라도 병이 들면 눈 먼 새도 아니 오네
거미라도 떠러지면 물것대로 돌아 가고
㉢옥식(玉食)도 쉬어지면 수채 구멍 찾아 가네
세상일 생각하니 만사가 허사로다
작자 미상, 「노인가(老人歌)」
(나) 공도라는 백발이요 못 면할손 죽음이라
천황 지황 인황 후에 복희 신농 헌원씨며 요순우탕 문무주공 성덕 없어 붕하셨나 ㉣어리석다 진시황은 만리장성 굳이 쌓고 장수불사 하려다 여산의 고혼되고 구선하던 한무제도 승노반이 허사되어 육십사의 붕하였으니 수요장단이 재천이라 그러한 도덕 영웅들은 유적이나 있거니와 우리 같은 초로인생* 공수래공수거라 아니 놀고 무엇 하리
작자 미상
(다) 늙어 병든 몸이 이 산정(山亭)에 누워 있어
세간 만사를 다 잊어 버렸노라
다만당 바라는 일은 벗 오과다 하노라
<제2수>
벗이 올 이 없으니 ⓑ동문(洞門)이 잠겨 있다
삼경(三逕) 송국죽(松菊竹)을 내 호온자 즐기노라
매일에 이를 즐기어니 늙는 줄을 어이 알리
<제6수>
늙는 줄을 내 모르니 이내 몸이 한가하다
시비인들 내 알며 영욕(榮辱)인들 내 알더냐
㉤아마도 일단사 일표음*이야 내 분인가 하노라
<제7수>
김득연, 「영회잡곡(咏懷雜曲)」
[31~ 34]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염왕이 또 명령했다.
“그놈이 그리해도 승복하지 않으니 아주 형적이 없어지도록 기름에 삶으라.”
귀졸이 명령을 듣고 큰 가마솥에 기름을 한 섬을 붓고 펄펄 끓이며 방주를 잡아넣으려 하니 방주가 겁이 나고 몹시 두려워 빌며 말했다.
“소신이 어리석어 부모의 말씀을 거역했더니 이제 불효한 죄로 형적도 없게 되었사오니 어찌 저의 죄를 모르겠습니까. 염라대왕의 넓으신 덕택으로 다시 세상에 내보내 주옵시면 개과천선해 부모를 지성으로 섬기겠나이다. 바라건대 소신의 죄를 사해 주옵소서. 만일 말처럼 아니하거든 다시 잡아들여 즉시 삶으소서.”
방주가 이렇듯 말하며 눈물이 비 오는 듯했다. 염왕이 그제야 불쌍히 여겨 특별히 용서하시며 말했다. “네가 이미 죄를 알고 깨달았으니 십분 헤아려 놓아주겠노라.” 하시며 황건역사에게 ㉠명령하셨다.
“저놈을 다시 풀어 주어라.”
황건역사가 명령을 듣고 방주의 뺨을 한 번 치니 다시 완연한 사람의 몰골이 되었다. 그리고 황천강에 이르러 방주를 발로 밀어 차 물에 빠뜨렸다. 방주가 정신이 아득해 몸에 소름이 끼치며 마음이 전율해 참인지 꿈인지, 눈이 캄캄하고 살이 다 아프며 뼈가 녹는 듯했다. 정녕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듯 황연대각해 전일 부모 앞에서 하던 일을 다 뉘우치고 마음에서 효심이 솟아나며 부인 정 씨가 하던 말이 당연했다는 것을 깨닫고 부끄러워했다.
눈을 떠 보니 동창은 아직 밝지 않았고 부인 정 씨는 등불 아래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방주가 일어나 부인에게 절하고 말했다.
“내가 어리석어 전일 부인의 지극한 말씀을 듣지 아니했는데 이제야 과연 깨달았으니 죄를 용서해 주시오.”
부인이 일어나 기뻐하며 ㉡답례하고 말했다.
“군자의 말씀을 들으니 구름을 헤치고 다시 해를 보는 듯해 천첩의 큰 행복인가 합니다.”
방주가 부인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내가 배우지 못해 무식하고 어리석은 일이 많으니 부인이 용서하시고 착한 도를 가르쳐 주시오.”
부인과 더불어 부모의 침소로 가서 신성문안하고 땅에 엎드려 울며 말했다.
“불초자 방주는 전일에 부모의 은덕을 모르고 부모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사오니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하옵니다. 하오나 부모의 사랑 덕분에 목숨을 지금까지 보전한 것을 몰랐사오니 어찌 인륜이라 하겠습니까. 지금은 회과자책했사오니 부모 슬하를 떠나지 아니하면서 지성을 다해 길러주신 은혜를 만분지 일이나 갚을까 하나이다.”
진사 부부가 방주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네가 저렇듯 깨달은 것은 천지신령이 도우심이며 방씨 가문을 빛내게 하고 늙은 우리 부부의 홍복인가 하노라. 네가 매사를 동동촉촉해 부모와 처자를 보전케 하며 우리 방씨 가문을 창성케 하라.”
방주 부부가 절하고 물러나와 그날부터 갈성진력해 공양하고 의복지절을 지극히 하며 혼정신성하며 거처 출입을 지성으로 돌보니 진사 부부와 인근 사람들이 모두 칭찬했다.
[중략 부분 줄거리] 방주는 도적 무리를 평정하고 그 공을 인정받아 벼슬에 오른다. 이후 방주는 마대영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출정했지만 포로로 잡히고, 황제마저 적에게 포위된다.
선관이 부인에게 홍포와 화관을 주며 말했다.
“이는 천상의 보배라. 창검도 아니 들며,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아니하고 물에 들어도 젖지 아니하는 것이라. 속히 큰 공을 이루라.”
선관이 또 열여검과 홍선을 주며 말했다.
“이 부채는 조화가 무궁무진하니 적진을 향해 부치면 일시에 불이 일어날 것이니 부디 잘 간수했다가 급한 때를 당하거든 부치라. 국가의 사세가 급박하니 때를 잃지 말라.”
선관이 검과 부채를 주고 간데없으니 부인이 공중을 향해 무수히 절했다. 문득 난데없는 백호가 단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어 부인이 기뻐하며 백호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네가 나를 위해 왔나 보구나.”
부인이 백호의 등에 올라타고 집에 돌아와 부모 앞에 하직하고, 유 부인과 한 낭자와 더불어 작별하며 말했다. “그대들은 부모를 공양하시오. 나는 낭군과 함께 죽고자 하니 만일 하늘이 도우시면 낭군을 만나 무사히 돌아와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나 볼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지하에서 서로 보기를 기약하오니 소첩을 조금도 생각하지 말고 부모를 모셔 상서의 은혜를 저버리지 마시오.”
부인이 눈물을 흘리니 유 부인과 한 낭자가 또한 슬픔을 이기지 못해 말했다.
“효열부인의 정성은 하늘이 알 것이나 여자의 약한 몸으로 전장에 나가 어찌 살아오기를 바라리오. 이제 영이별을 면치 못할 것이니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세 사람이 붙들고 서로 눈물을 흘렸다.
부인이 그날로 길을 떠나 서평관에 이르니 무수한 적병이 명나라 진영을 에워싸서 사면이 철통같으니 일개 여자의 몸으로 어찌하리오. 백호에게 경계해 말했다.
“지금 황제께서 적 진중에 싸이시어 사직을 보전하기 어렵도다. 네 평생 힘을 다해 나와 함께 큰 공을 이루어 국가를 보전케 하고 낭군을 만나게 하라.”
백호가 이윽히 듣다가 다시 적 군중에 달려들어 무수히 사람을 물어 죽이고, 부인은 열여검을 들어 풀 베듯하니 적졸들이 혼비백산해 일시에 흩어지고 말았다. 황제께서 적 진중에 싸여 거의 죽게 되었는데, 문득 찬바람이 일어나며 동쪽에서 한 젊은 장수가 몸에 홍포를 입고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백호를 타고 공중으로 달려들어 무수한 적병을 물리쳤다. 황제께서 정신을 차려 바라보시다가 신하를 돌아보며 물었다.
“저 장수는 분명 사람이 아니라 형용이 천신이다. 하늘이 도우시어 대명 사직을 보전코자 하시어 신장을 보내셨도다. 누가 알 자가 있으리오.”
황제께서 못내 즐거워하셨다.
이때 부인이 적병을 물리치고 황제 앞에 엎드리니 황제께서 급히 단에서 내려와 부인에게 ㉢하례하며 말하셨다.
“과인이 덕이 없어 사직을 보전하지 못하고 적 진중에 싸여 거의 죽게 되었더니 천신이 굽어살피시어 잔명을 보전케하니 어찌 황감하지 아니하리오.”
작자 미상, 「방주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