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고1 모의고사 국어 지문 모음

[1 ~3] 다음은 학생이 과제 수행 후 실시한 발표이다.

안녕하세요? 지난 시간에 ‘대화의 원리’ 중 ‘협력의 원리’에 대해 배웠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협력의 원리란 대화 참여자는 대화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대화의 원리 중 ‘체면 유지의 원리’에 대해 발표해 보겠습니다.

체면 유지의 원리란 대화 참여자들은 상대방의 소극적 체면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적극적 체면을 세워 주는 것입니다. 이때 체면은 모든 사회 구성원이 스스로 주장하고 보호받고자 하는 공개적인 자아의 모습을 뜻하는데, 체면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적극적 체면은 상대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으로, 집단 안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와 관련이 있습니다. 적극적 체면을 세워주는 방법에는 상대의 능력을 인정하거나 서로의 공통점을 강조하는 것 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이어달리기 우승팀의 마지막 주자였다고 생각해 보세요. 만약 팀원이 여러분께 “달리기를 제일 잘하는 네가 우리 팀 마지막 주자라서 정말 든든했어.”라고 말했다면 어떨까요? (청중을 둘러보며) 네, 다들 미소를 짓고 계시네요. 이 발화가 바로 여러분의 적극적 체면을 세워 드린 것입니다.

둘째, 소극적 체면은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 의해 방해받고 싶지 않은 욕구와 관련이 있습니다. 소극적 체면을 지켜 주려면 ㉠상대의 부담을 완화하는 표현을 쓰거나 상대에게 부담을 준 것을 사과하는 등의 방법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며칠 전에 제가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늦게 온 친구가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라고 사과를 하더라고요. 만약 그 친구가 사과하지 않았다면 제 마음이 어땠을까요? (청중을 둘러보고) 기분이 좋지 않았겠죠? 이런 경우가 소극적 체면을 지켜 준 것에 해당합니다.

지금까지 인정받고자 하는 적극적 체면, 간섭받지 않고자 하는 소극적 체면과 관련된 체면 유지의 원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발표를 들어 주신 여러분도 일상에서 이를 실천하여 원활하게 소통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4 ~6] 다음은 방송부 회의 중 일부이다.

방송부장 : 오늘 방송부 회의 안건은 ‘학교 홍보 영상 내용 구성하기’입니다. 학생들의 학교생활이 잘 드러나도록 홍보 영상을 제작하려고 합니다. 우리 학교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님들도 보실 수 있다는 점을 참고하여 의견을 제시해 주십시오.

부원 1 : 학교 홍보 영상 내용으로 우리 학교의 자랑인 동아리 활동은 어떨까요? 동아리 부원들의 동아리 소개와 실제 활동 모습을 담는다면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어 홍보 효과가 클 것입니다.

부원 2 : 하지만 모든 동아리를 소개하기엔 시간적 제약이 있지 않을까요?

부원 3 : 맞습니다. 영상 촬영에 동의하는 동아리만 소개하면, 전체 영상의 분량은 줄일 수 있습니다. 동아리 활동을 담을 때, 촬영 구도나 기법도 고려하면 좋겠어요.

방송부장 : 학교 누리집에도 탑재할 영상이니 전체 영상 분량은 선생님께 여쭤본 후 다음 회의 때 논의해 보겠습니다.

부원 2 : 학교 홍보 영상에는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뿐 아니라 우리 학교만의 특색이 잘 드러나는 다른 것들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학교는 사제동행 활동이 매우 활발한 편이므로, 선생님과 함께하는 체육 한마당과 쓰레기 줍는 플로깅 활동을 넣으면 좋겠습니다. 조사해 보니, 사제 플로깅 활동은 지역 신문에까지 여러 차례 소개되어 활용할 자료가 많더라고요.

부원 4 : 동아리 활동과 사제동행 활동을 학교 홍보 영상에서 보여 주는 것은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학생들의 학교생활이 잘 드러나도록 하려면 일상적인 학교생활의 모습도 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점심시간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학생들의 모습을 찍을 것을 제안합니다. 그때 숲으로 둘러싸인 우리 학교의 멋진 경치를 배경으로 함께 보여 주면 더 좋지 않을까요?

방송부장 : 그 두 가지를 한 번에 촬영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부원 4 : 네. 우리 학교 드론 동아리에 촬영을 부탁하면 될 것 같은데요.

부원 1 : 아, 그런 방법이 있네요. 촬영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방송부 외에 다른 학생들도 영상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송부장 : 지금까지 영상에 담을 내용으로 학생 동아리 활동, 체육 한마당, 플로깅 활동, 일상적인 학교생활 모습 등을 말씀 해 주셨습니다. 그 외의 의견이 있으면 이야기해 주십시오.

부원 3 : ____________[가]___________

방송부장 : 영상 시청자의 입장을 반영하면서도 영상 제작 후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까지 생각하셨군요.

[11 ~15]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일반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선거 과정의 전반을 ⓐ관리하는 선거관리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 기관이 행정부에 소속되어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정부형과 독립형으로 분류한다.

먼저 정부형은 행정부에 소속된 부처나 지방자치단체가 선거관리 사무를 담당하는 형태이다. 선거관리기관의 위원을 별도로 두지 않고 해당 부처 담당자가 선거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때 예산은 행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에 포함된다. 반면 독립형은 선거관리기관이 행정부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독립적인 조직으로 운영되는 형태이다. 예산의 편성 및 운용이 상당 부분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고, 기관의 위원들은 행정부 소속이 아닌 인사로 구성되어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한다. 그리고 이들은 대체로 임기가 보장된다.

우리나라는 선거공보의 접수ㆍ심사ㆍ발송과 투ㆍ개표소 운영을 포함한 선거의 공정한 관리 등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해 독립된 합의제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를 둔다. 선거관리에 필요한 예산을 독자적으로 편성하면 국회는 이를 ⓑ심의하고 의결하는데, 이것은 권력 기관의 상호 견제의 원칙에 ⓒ입각한 것이다. 또한 선거관리위원회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선거의 공정한 관리에 관한 공직선거규칙을 자체적으로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대통령 선거 등을 ⓓ 관할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 제114조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한 3인, 국회에서 선출한 3인, 대법관이 지명하는 3인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등을 관할하는 구·시·군선거관리위원회는 정당 추천인, 법관, 교육자 등으로 구성된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들은 공정성과 중립성의 의무를 지니므로 임기 6년 동안은 정당 가입과 정치 관여가 금지된다. 위원장은 위원 중 법관 출신이 호선되는 관행이 있는데, 이는 선거관리 전반에서 법률 해석의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모든 위원은 선거와 관련된 이의제기 및 각종 사안에 대한 표결권을 가지는데, 만약 그 결과가 가부동수인 때에는 위원장에게 결정권이 있다.

  • 호선: 어떤 조직의 구성원들이 그 가운데에서 어떠한 사람을 뽑음.
  • 가부동수: 찬성하는 수와 반대하는 수가 동일한 상태.

(나)
㉡선거공보는 후보자, 후보자의 배우자 및 직계존ㆍ비속의 각 재산상황, 체납실적과 병역사항, 후보자의 인적사항 등을 포함한 후보자정보공개자료 와 공약 등을 유권자들에게 알리는 수단으로, 후보자나 정당이 작성한다. 이는 유권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일반적인 선거공보는 책자형으로, 법정 기한 내에 온라인 또는 우편의 방식을 선택해 각급 선거관리 위원회에 접수해야 한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책자형 선거공보를 유권자에게 우편으로 발송하기 전에 법정 규격과 면수 등 형식적 요건의 충족 여부를 주로 심사한다. 하지만 공약의 현실성은 검열 하지 않는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누구든지 후보자정보공개자료에 관한 거짓 사실이 게재되었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선거관리위원회를 포 함한 수사기관 등에 신고나 고발을 할 수 있다. 이후 선거관리위 원회는 그와 관련된 증명 서류를 후보자 본인과 이의를 제기 한 사람에게 요구할 수 있다. 제출을 요구받은 해당 서류를 후보 자 본인이나 이의 제기자가 제출하지 않은 경우나 관련 내용이 거 짓 사실로 ⓔ판명되는 경우에는 선거관리위원회는 그 사실을 투 표소 등에 공고하고 사안에 따라 고발 등의 조치를 취한다. 또한 선거공보에 다른 후보자나 그 가족의 사생활과 관련된 내용을 적 시하여 비방하는 내용이 위법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선거관리위원회는 해당 사실을 공고한 후, 이를 수사기관에 고발해야 한다.

또한 공직선거법 제65조 제6항에 따르면 후보자정보공개자료와 그 소명자료는 책자형 선거공보의 둘째 면에 게재해야 한다. 이를 게재하지 않거나 둘째 면이 아닌 다른 면에 게재하면 해당 선거공보는 접수가 거부된다. 둘째 면이 부족하여 셋째 면에 연이어 게재한 경우는 제외한다. 다만 개인정보 보호의 필요성을 고려하여 후보자정보공개자료 중 일부 정보에 대해서는 제한적으로 고지를 거부하는 것이 허용된다. 예를 들어 직계존ㆍ비속의 재산이 후보자와 무관한 독립적인 생계에 의해 형성되었음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고지거부’로 기재할 수 있다. 또한 후보자나 직계비속이 질병 또는 심신장애를 사유로 병역의 만기를 채우지 못하고 전역하게 된 경우에는 병역처분사항 및 그 사유를 공개 또는 비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직계비속 중 혼인한 여성 등의 재산상황은 공개 대상에서 제외된다.

  • 직계존ㆍ비속: 혈연을 통해 친자 관계가 직접적으로 이어져 있는 존속(부모)과 비속(자녀).
  • 적시: 지적하여 보임.

[16 ~ 19]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나미브 사막은 연평균 강수량이 극히 적은 환경이지만, 벵겔라 해류의 영향으로 안개가 자주 형성된다. 나미브 사막에 살고 있는 딱정벌레는 등판의 미세 구조와 물방울을 입 쪽으로 유도하는 행동을 통해 이 안개를 수분 자원으로 삼는다. 딱정벌레의 등판은 친수성과 소수성 성질이 교차하는 복합 구조로 되어 있다. 곡면인 등판 표면에는 미세한 돔 형태의 돌기가 배열되어 있는데, 이 돌기의 꼭대기 부분은 물과 결합하기 쉬운 친수성을 띤다. 반면 돌기 옆면과 돌기들 사이의 바닥면은 왁스와 유사한 성분으로 되어 있어 물을 배척하는 소수성을 띤다. 젖음성이란 액체가 고체 표면에 퍼지는 정도를 일컫는데, 젖음성이 크면 친수성, 작으면 소수성이라고 한다. 딱정벌레의 등판에 나타나는 젖음성의 이질적인 분포는 안개 속의 미세 물입자를 포집하고 이동시키는 핵심 원리로 작용한다.

이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접촉각과 표면 에너지의 상관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접촉각이란 액체가 고체 표면 위에 놓일 때, 고체-액체-기체 세 가지가 만나는 지점에서 액체 표면이 고체 표면과 이루는 각도이다. 이는 응집력과 부착력 사이의 힘겨루기에 의해 결정되는데, 응집력은 액체 분자끼리 뭉치려는 힘이고 부착력은 액체 분자가 고체 표면에 달라붙으려는 힘이다. 고체의 표면 에너지가 높을수록 부착력이 강해져 액체가 넓게 퍼지며, 접촉각이 90°보다 작아져 친수성을 띤다. 반대로 고체의 표면 에너지가 낮을수록 응집력이 우세해져 액체가 구형에 가깝게 맺히며, 접촉각은 90° 이상이 되어 소수성을 띤다. 일반적으로 물에 대한 접촉각이 90° 이상인 소수성 물질의 표면 에너지는 20~40mN/m(미터당 밀리뉴턴) 정도로 유리나 금속 같은 친수성 물질의 표면 에너지보다 낮다. 다시 말해 표면 에너지가 높을수록 접촉각은 작아진다.

딱정벌레의 등판에서 물의 포집과 이동은 친수성과 소수성의 차이에 의해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안개가 낀 새벽에 바람이 불어오면 공기 중의 미세한 물입자는 돌기 꼭대기에 충돌한다. 친수성 부분은 표면 에너지가 높아 물입자가 즉시 흡착되어 응축핵을 형성한다. 이후 물입자와의 지속적인 충돌로 물방울들이 합쳐져 그 부피가 커지는데, 물방울의 무게가 부착력을 넘어서는 임계점에 도달하면 중력에 의해 아래로 떨어진다. 이때 돌기 꼭대기를 제외한 소수성 부분은 낮은 표면 에너지로 인해 물방울과의 높은 접촉각을 유지하므로 물방울이 표면에 퍼지지 않고 구형을 유지하게 돕는다. 이는 물방울과 표면 사이의 마찰 저항을 극소화하여 미세한 경사의 유도로만 있어도 입까지 쉽게 흘러내릴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나미브 사막 딱정벌레들은 이러한 구조적 효율성을 활용하여 생존을 위한 행동을 더욱 강화한다. 이 딱정벌레는 안개가 짙어지면 짧은 시간 동안 물구나무를 서듯 꽁무니를 들어 올려 몸을 지면과 약 23°로 유지하는 ‘안개 쬐기’ 자세를 취한다. 이 자세는 체온을 빨리 손실되게 하고 포식자에게 노출될 위험을 높이지만, 안개 입자가 등판 돌기에 충돌할 확률을 높여 등판의 물방울이 중력에 의해 입 쪽으로 잘 흐를 수 있도록 한다. 이는 나미브 사막 딱정벌레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최적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20 ~2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철학자들은 철학이 시작된 이래로 생각에 관한 다양한 논의를 해 왔다. 그중에서도 인간이 언제 생각을 하게 되는지 철학자 나름의 의견을 언급해 왔다. 이를 정리하면 여러 상황에서 생각이 일어나는 조건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하이데거는 예측하지 못한 사건이 발생할 때 생각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이 생각한다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이데거는 특별하게 의식하지 않은 채 어떤 것과 관계한다는 의미로 ‘손안에 있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손안에 있음’은 문이 평소와 다름없이 잘 열릴 때, 손잡이와 문이 있다는 것에 대한 어떤 생각도 하지 않는 상황과 같다. 이와 반대로 ‘손안에 있지 않음’은 잘 열리던 문이 열리지 않아 손잡이와 문을 의식하게 되는 상황과 같다. 이는 자기 행동에 대해 자기 모습을 의식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는 ‘손안에 있지 않음’의 상황, 즉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할 때 인간이 생각한다고 보았다.

들뢰즈는 예기치 못한 사건을 우연히 마주쳤을 때, 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그는 하이데거처럼, 생각은 기본적으로 예기치 못한 사건과의 만남에서부터 발생한다고 보았다. 들뢰즈는 생각이 사건과의 우연한 마주침에서부터 비자발적으로 발생한다고 보았는데, 여기서 ‘비자발적’이라는 말은 낯선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생각이 일어나도록 강제한다는 것이다. 늘 무표정으로 일찍 집에 오던 동생이 매우 늦은 시간에 귀가했다고 하자. 평소와 다르게 동생은 미소를 짓고, 상기된 얼굴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들어왔다. 이때 동생의 미소, 상기된 얼굴, 흥얼거리는 노래에 관해 해석하게 된다. 이때 생각을 하게 되고 해석의 결과로 동생의 낯선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일종의 자기 배려로서, 낯섦과 불편함을 친숙함과 편안함으로 전환하려는 과정에 해당한다.

또한 생각이 일어나는 조건에는 ‘무의미’를 들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사과가 붉으면서도 동시에 붉지 않다.’라는 모순된 표현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일반적으로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들뢰즈는 무의미가 단순히 의미가 결여된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모순된 두 의미를 포함해 그 사이에 더 많은 의미가 공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사랑이면서도 사랑이 아니다.’라는 모순의 상황은 단순히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의 사이에 매우 많은 생각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의미는 우리에게 의미를 채우게 하여 생각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어떤 존재를 단독적이고 교환 불가능한 존재라고 인식할 때 생각이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절대자의 명령 앞에 깊이 생각하는 아버지를 예로 들어, 고뇌와 불안의 가치를 설명했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타자를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한다. 교환 가능한 존재와 교환 불가능한 존재가 그것이다. 전자는 아들을 대체 가능한 존재로 보고, 후자는 아들을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보는 것이다. 아들을 교환 불가능한 유일무이한 존재로 여긴 아버지가 딜레마를 끌어안고 깊이 고뇌한 것은 진정한 사유 행위와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24~27] (가)와 (나)는 학생이 읽은 글이고, (다)는 이를 바탕으로 쓴 논증하는 글의 초고이다.

(가)
복지국가의 대표적인 할당 원리로 보편주의와 선별주의가 있다. 보편주의는 사회적 위험이나 질병 그리고 연령 등에 따라 사람들이 특정 욕구를 갖게 되었다고 판단될 때, 이러한 욕구를 가진 모든 사람에게 물품, 지원금 등의 급여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때 급여 대상자의 경제적 능력은 고려하지 않는다. 보편주의의 밑바탕에는 사회적 시민권이 자리 잡고 있다. 이에 의하면, 특정 욕구를 지닌 모두에게 급여가 지급되고, 사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도 보장된다.

한편, 선별주의는 사회적 위험이나 질병 그리고 연령 등에 따라 특정한 욕구를 지니게 된 자 중에 특정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에게만 급여를 제공하는 것이다. 소득과 재산 정도에 따라 저소득층을 급여 대상자로 삼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선별주의는 자산 조사를 통해 저소득층을 가르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전문가의 진단에 의해 복지 자원을 할당하는 경우도 선별주의에 포함된다. 이때 대상자의 심리적 위축이나 근로 의욕 상실에 유의해야 한다.

(나)
정책을 결정할 때에는 정책 수단과 정책 대안을 탐색해야 한다. 정책 수단은 목표의 달성을 위한 개별적인 방법들이고, 정책 대안은 이 수단들을 다양하게 묶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대도시의 교통을 원활히 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국자는 지하철 건설, 버스노선 신설, 또는 도로 확장 등 각각의 개별적인 정책 수단을 검토할 수 있다. 또 지하철과 버스, 버스와 도로, 지하철과 버스와 도로처럼 개별적 수단을 다양한 방식으로 묶어 여러 정책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 정책 수단을 마련할 때에는 창의적 아이디어, 과거의 경험, 다른 지역이나 국가의 사례, 이론적인 연구 결과 등의 범위에서 탐색할 수 있다.

제한된 예산의 범위 내에서 정책의 능률성과 효과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 수단이나 정책 대안이 선택되어야 한다. 이때 능률성은 투입 대비 산출의 비율을 의미하고, 효과성은 목표 달성의 정도를 의미한다. 능률성과 효과성은 상충되는 경우도 있으므로 이에 유의해야 한다. 능률성만 강조하면 예산은 절약할 수 있으나 목표에 미도달할 수 있고, 효과성만 강조하면 목표는 달성할 수 있으나 예산이 과도하게 낭비될 수 있다.

(다)
시청 공청회에서 내년 ‘청년 1인 월세 가구에 대한 월세 지원금 지급 방안’에 대한 의견 대립이 첨예하여 정책 결정이 미뤄졌다. 청년 주거비 지원 예산 내에서 주거비 경감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청년 1인 월세 가구 모두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자는 방안과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청년들을 선별하여 차등 지급하자는 방안으로 대립했다. 청년 1인 월세 가구 모두에게 지원금을 제공하면 근로 의욕 상실과 같은 부작용 없이 사회적 시민권을 보장해 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전자에 찬성한다.

그 근거로 첫째, 지원받은 청년들의 삶의 질에 대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시 정책연구소의 만족도 조사 결과를 보면, ▢▢시는 최근 2년간 모든 청년 1인 월세 가구에 지원금을 지급 했는데, 지원받은 대부분의 청년이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또 서류 미비 등으로 실제 지원 대상에서 누락되는 것을 막아 청년들의 만족도가 높았다고 한다. 둘째, 사회 통합에 기여할 수 있다. 사회복지 전문가 박○○ 교수는 해당 청년 모두에게 지원금을 지급하지 않고 경제력에 따라 일부 청년층에게만 차등 지급한다면, 수혜자와 비수혜자 사이에 갈등이 유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부유한 청년에게도 지원할 경우, 실제 지원이 필요한 청년들에게 지원되는 금액이 줄어들기 때문에 정책의 효과성이 떨어진다며 반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안은 소득, 자산 수준 등의 자격 심사를 포함한 여러 행정 비용이 절약되어 이를 지원금으로 전환할 수 있으므로 더 능률성 있는 정책 수단이다.

따라서 모든 청년 1인 월세 가구에 균등하게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에 찬성한다.

[28 ~ 30] 다음은 작문 상황과 학생이 작성한 초고이다.

⭘ 작문 상황
도자기 공예 체험에 참여하며 쓴 체험 일지를 바탕으로 소감문을 작성하여 교지에 실으려 함.

⭘ 초고
얼마 전 가족들에게 내가 직접 만든 도자기 작품을 선물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도자기 공예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가족들을 생각하며 신청한 것이지만, 돌이켜 보니 그 시간은 나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했다.

공방에 처음 갔던 날 공예가 선생님께서는 도자기 공예에 쓰이는 흙의 종류를 설명해 주셨다. 공예에 쓰이는 흙에는 백자토, 황토, 석기토 등이 있는데 백자토는 발색이 뛰어나지만 모양 변형이 어렵고, 황토는 철분 함량이 높고 열을 가한 후에는 어두운 색을 띠기도 한다. 석기토는 상대적으로 모양 변형이 쉽고 내구성이 강하다. 이번 체험에서는 석기토를 사용하기로 했다.

첫 번째 활동은 ‘물레 성형 기법’을 활용한 꽃병 제작이었다. 물레 성형 기법이란 물레 위에 점토를 올려놓고 물레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둥근 형태의 도자기를 빚는 기법이다. 직접 손으로 물레를 돌리는 전통 물레와 전동 모터로 회전하는 전기 물레 중 전기 물레로 체험을 진행하였다. 선생님의 시범을 볼 때와 달리, 조금만 손에 힘을 주어도 흙이 아래로 주저앉거나 찌그러져 계획한 대로 모양을 잡기 어려웠다. 선생님은 흙이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손에 힘을 빼고 천천히 모양을 다듬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흙이 중심을 잡고 돌아가도록 부드럽게 감싸주었더니 제법 꽃병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다음으로 ‘흙가래 성형 기법’을 활용해 컵을 만드는 활동을 했다. 흙가래 성형 기법은 점토를 가래떡처럼 길게 늘여 밑판에서부터 한층 한층 쌓아 올리는 기법이다. 선생님께서는 컵의 하단부에 해당하는 흙가래는 약간 굵게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이유를 물었더니, 그 점토들이 물건의 받침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물레 없이 손으로 직접 만들었더니 모양이 정교하지 않고 삐뚤빼뚤했지만, 나만의 손자국이 남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니 보람찼다.

일주일 후, 선생님이 미리 초벌 소성 해두신 내 꽃병과 컵에 재벌 소성을 하기 위해 다시 공방을 찾았다. 소성이란 가마에서 도자기를 굽는 것이다. 초벌 소성은 도자기를 처음 가마에 넣어 수분을 제거해 형태를 안정적으로 고정하는 작업이다. 초벌된 도자기는 충격에 약해 실제 사용하긴 어렵다. 재벌 소성은 초벌된 도자기에 유약을 발라 다시 가마에 굽는 것이다. 유약이 녹으면서 도자기 안으로 스며들어 도자기가 단단해지는 것이다. 꽃병과 컵에 유약을 바르면서 완성될 작품을 생각하니 마음이 설렜다. 한 달 후에 작품을 찾으러 가기로 하고 이번 체험을 마무리하였다.

처음 도자기 공예 체험을 신청했을 때는 흙만 잘 빚고 가마에 넣으면 금방 완성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또 도자기는 잘 깨어져서 일상생활에서 널리 사용되지 않는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31 ~34]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상서 또한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여러 친족들이 역시 그에게 말하였다.
“유 승상과의 약속은 비록 돈독하지만 황제의 명을 어찌하겠습니까? 또한 유생은 걸식하며 의탁할 곳도 없습니다. 그러나 달생은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한림학사에 이르렀으니 부귀가 빛나고 집안도 화려하니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합니다. 원컨대 황제의 명을 따라 달 씨 집안과의 혼인을 허락하십시오.”

상서가 더욱 고민하면서 어찌 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이때, 황제가 또 교서를 내려 말하였다.
“듣건대, 유생이 아직도 경의 집에 머물러 있어 달목 집안과의 혼인을 망설이고 있다 하니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만약 국명을 따르지 않는다면 먼저 정옥을 참수하고 상서의 일족을 멸하겠노라.”

황제의 명이 이와 같이 급박하니 무슨 다른 계책이 있겠는가? 상서가 어쩔 수 없이 달목 집안과의 혼인을 결정하니 부인과 여러 친족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그러나 상서는 혼자 분통을 이기지 못하였는데, 또한 유생과의 혼례 날이 불과 한달 밖에 남지 않았다.

이때, 낭자가 이 말을 듣고 놀라고 어쩔 줄을 몰라 부모를 찾아뵙고 말하였다.
“한 여자가 두 남편을 섬기는 것이 예전의 예에 있습니까?”
상서는 묵묵히 아무 말도 못하였다. 부인이 낭자를 꾸짖어 말하였다.
“너는 규방에 있는 여자로서 부모의 처분을 기다릴 것이지, 이처럼 하소연하는 일은 네가 관여할 바가 아닌데 너는 어찌 여기에 와서 쓸데없는 말을 하느냐?”

낭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두 번 절하고 울며 대답하였다.
“아버님께서 전날에 유 승상과 금석처럼 굳게 정혼을 하시고 또한 저로 하여금 그 승상 앞에서 예를 행하게 하셨습니다. 유 승상께서도 역시 저에게 옥지환 을 주시면서 ‘이것으로써 너는 마침내 유 씨 집에 들어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부터 유 씨의 가문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듣건대 달목 집안과 혼인을 결정하셨다고 하니 이것이 사실입니까?”

부인이 그 말을 듣고 말하였다.
“다른 방법이 없다. 황제께서 하교(下敎)*하심이 이와 같으니 형세상 어찌할 수가 없다. 비록 부모라 하더라도 어찌하겠느냐, 어찌하겠느냐?”

낭자가 눈물을 흘리며 아뢰었다.
“만약 애초에 유 승상 댁과 정혼한 일이 없었다면 제가 규방에 있는 몸으로 어찌 이것저것 가릴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찾아뵙고 당돌하게 아뢰는 것은 사사로운 욕심에 예를 잃어서 여러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받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지금 황하가 아직도 허리띠처럼 되지 않았고, 태산도 역시 숫돌처럼 되지 않았으니 원컨대 부모님은 예전의 약속을 저버리지 마시고 다시 깊이 생각하소서. 제가 오랫동안 규방에 있으면서 경사(經史)를 조금 읽었으니,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제가 이미 유 승상 댁에 예를 행하였는데 또 달 씨 집안과 혼인을 한다면 이것은 두 남편을 섬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무릇 살아서 예를 지키지 못한다면 죽어서 의를 지키지 못한 혼령의 신세에서 어찌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살아서 나쁜 짓을 하지 않아야 죽어서도 원한이 없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충신은 의를 지키기 위해서 죽음을 어려워하지 않고 열녀는 정절을 지키기 위해서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원컨대 부모님은 천금과 같은 귀하신 몸을 보존하시고 소녀의 목숨을 구하지 마시고 황실의 벌에서 벗어나소서.”
이후로부터 낭자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머리를 싸매고 누워 일어나지 않았다.

[중략 부분 줄거리] 유생은 방 상서의 집을 떠나고, 방 낭자는 달생과의 혼례일에 자결한다. 유생은 꿈을 통해 방 낭자의 죽음을 알게 되고, 그리움에 방 낭자의 무덤을 찾았다가 설핏 잠이 든다.

꿈에서 깨어나 꿈속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서 무덤을 살펴보니 무덤이 갈라지고 낭자가 다시 살아났다. 유생이 놀라고 기쁘고 정신이 없어서 묵묵히 아무 말도 못하고 낭자와 서로 바라보면서 눈물만 흘렸다.

잠시 뒤에 낭자가 눈물을 닦으면서 말하였다.
“저와 낭군의 인연이 이렇게 엷어 그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저승에 몸을 맡기고도 원한을 풀지 못하였는데, 상제께서 저의 정절을 보시고 후토 부인에게 명하여 저를 다시 인간으로 환생시켜 주셨습니다. 다시 낭군과 끊어졌던 속세의 인연을 맺게 해 주셨으니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유생도 감사의 절을 하고 평소 고생한 일과 낭자를 그리워한 정을 다 털어놓고 서로 함께 슬퍼하였다.

낭자가 말하였다.
“제가 지금 이렇게 다시 살아났으니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이 마땅한 도리일 것입니다. 그러나 달 씨 가문에서 제가 다시 살아난 것을 안다면 예전의 악행이 다 끝나지 않아 반드시 침범할 것입니다. 황제께 이 일을 아뢴다면 부모님께 화가 미칠 것이니 이렇게 되면 다시 살아난 것은 죽은 것만 못한 것입니다. 우선 깊은 산속에 숨어서 달 씨 가문의 권세가 없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부모님을 찾아뵙고 낭군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작자 미상, 「유생전」-

  • 하교: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가르침을 베풂.

[35 ~ 38]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부모의 등골이 빠진 등록금으로 다니는 삼류대학은 금의(錦衣)가 아니라 남루였다. 남루는 교복까지 언니 것을 물려 입어야 했던 고교 시절로 끝내고 싶었다. 그래도 낙방은 낙방이니까 체면상 실의에 빠져 있는 그녀에게 ㉠어머니가 넌지시 고맙다, 네가 효녀다라고만 속삭이지 않았다면 머나먼 미국 땅으로 시집 같은 거 안 갔을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그녀에게 비굴하고도 은근한 목소리로 고마워했을 때 그녀는 있지도 않은 희생정신을 들킨 것처럼 느꼈고 그 느낌이 여간 고약한 게 아니었다. 누가 누구를 위해 희생한단 말인가. 희생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들한테 속아서 희생당한 것을 빨리 만회하고 싶었다. 꼴도 보기 싫은 식구들한테 뭔가 본때를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속에서 지글거릴 때 친척의 소개로 미국서 참한 신부를 물색하러 나온 신랑을 만나 단시일 안에 뜻이 맞아 혼사가 이루어졌다. 서로 맞아떨어진 건 뜻이라기보다는 조급증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어머니가 고맙다고 말하면 서 한참이나 쥐고 있던 손의 거칠고 끈적한 습기를 잊지 못했다. ㉡하루속히 떨쳐버리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중략 부분 줄거리] 미국으로 시집간 후 ‘앤’으로 불린 후남은 한국에 있는 가족과 교류하며 유대감을 느끼는 등 처음에는 만족스러운 생활을 한다. 하지만 곧 후남은 가족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 무렵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소식을 듣고, 한국을 찾아 이모네에 살고 있는 어머니를 만난다.

“후남아, 밥 먹어라. 후남아, 밥 먹어라.”
어머니가 저만치 짧게 커트한 백발을 휘날리며 그녀를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아아 저 소리, 생전 녹슬 것 같지 않게 새되고 억척스러운 저 목소리, 그녀는 그 목소리를 얼마나 지겨워했던가. 밖에서 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나 동무 집에서 같이 숙제를 하고 있을 때도 온 동네를 악을 악을 쓰면서 찾아다니는 저 목소리가 들리면 그녀는 어디론지 숨고 싶었다. ㉢왜 그냥 이름만 불러도 되는 것을 꼭 밥 먹어라는 붙이는지. 하긴 끼니때 아니면 찾아 다니지도 않았으니까 그 소리가 꼭 끼니나 챙겨 먹이면 할 도리 다했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아침에 늦잠 자는 그녀를 깨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늦겠다 어서 일어나라 하면 될 것을 꼭 후남아 밥 먹어라로 깨웠다. 급한 건 학교가 아니라 밥이라는 듯이. 어렸을 때는 밥 먹어라 소리가 그리도 듣기 싫더니 자라면서 후남이라는 이름을 더 싫어하게 되었다. 학교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다가 그녀를 한 번 볼 거 두 번 보면서 이상하게 웃는 것도 기분 나빴는데 너 사내동생 봤냐? 혹은 너 몇째 딸이야? 이렇게 물어보는 어른도 있었다. 그녀의 동기간들은 다 병자 돌림이었다. 언니들 이름에도 병자를 넣어 지었는데 그녀의 이름만 얻어온 자식처럼 항렬자에서 제외시켰다. 밑으로 사내동생 보라고 그렇게 지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어머니가 어쩌다 딸에게 애정 표현을 할 때도, 밑으로 사내동생을 줄줄이 둘이나 본 신통한 내 새끼, 하는 식이었다. 그럼 난 오직 사내동생을 보기 위해 태어났단 말인가. 처음부터 자식의 고유한 존재 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이름을 지은 부모, 고유한 존재 가치 없이 태어난 인생, 둘 다 싫었다.

“후남아, 밥 먹어라. 후남아, 밥 먹어라.”
백발의 어머니가 젊고 힘찬 악을 악을 쓰고 있었다. 하여튼 우리 엄마 밥 좋아하는 건 알아줘야 해. 아들자식을 원할 때도 그런 마음이었겠지만 딸들 앞에서 아들을 특별 대우할 때도 변명처럼 말하곤 했다. 야아는 제삿밥 떠놓을 애니까라고. 아아, 가엾은 우리 엄마. 그녀는 달려오는 엄마를 한길 한가운데서 맞이했다.

“어디 갔었냐, 밥 뜸 드는데. 야아는 꼭 끼니때면 싸돌아다닌다니까.”
그것도 어려서 많이 듣던 소리였다.
㉣“엄마 나 알아? 나 후남인 거, 알아보고 하는 소리야?”
“야아가 에미를 놀리네. 밥 다 타겄다. 어여 가자.”
아닌 게 아니라 집 안에선 밥 뜸 드는 냄새가 구수하고, 부뚜막 앞에 서 있던 이모와 조카며느리와 그 밖의 낯선 여자들이 신기한 얼굴로 제각기 한마디씩 했다.
“미국 딸 보고 정신이 돌아오셨나 봐요. 안 그래요? 아주머니.”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진작 오시지.”
“정신이 돌아온 건지, 더 달아난 건지 원. ⓐ난 십년감수했다. 귀한 손님 왔으니까 반찬 한 가지라도 더 챙겨오려고 야아네로 건너가서 찌개 간도 보고 나중에 고구마도 좀 쪄오라고 일르고 있다가 보니까 우리 집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뭐냐. 마당에도 연기가 자욱하고. 불난 줄 알았어. 이 화상이 이제 안 하던 불장난까지 하니 어쩔꺼나 한달음에 달려와 보니 멀쩡하게 밥을 짓고 있지 뭐냐. 곧잘 지었어. 안 쓰던 무쇠솥도 깨끗이 가셨나 봐. 밥에 녹물이 하나도 안 든 거 보렴.”

녹물은 안 들었는지 몰라도 밥 뜸 드는 냄새에는 무쇠 냄새도 섞여 있었다. 매캐한 연기 냄새도, 연기가 벽의 균열을 통과하면 서 묻혀온 흙냄새도, 그 모든 냄새와 어우러진 밥 뜸 드는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아 이 냄새, 이 편안함, 몇 생을 찾아 헤맨 게 바로 이 냄새 아니었던가 싶은 원초적인 냄새, 이열치열이라더니 음식 때문에 뒤집힌 비위를 부드럽게 위로하는 이 편안한 냄새. 어머니는 왜 아무 연고도 없는 이리로 왔을까. 나는 또 생전 처음 맡아보는 이 냄새가 왜 이렇게 좋은가.

-박완서, 「후남아, 밥 먹어라」-

[39 ~42]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어화 아깝도다 아름다운 봄이 간다
이 몸이 분주하여 가는 줄 몰랐더니
서글퍼서 창을 여니 화초가 난만하다
홀연히 일어서 동산으로 돌아드니
실버들 가지 우에 꾀꼴 소리 낭자하고
구슬발 수놓은 막에 제비 소리 즐거웁다
아름다운 꽃 사이로 나비쌍쌍 춤을 추고
(중략)
향기론 목단화는 담 안에 피었더니
아침 해 떠오르니 더욱 곱게 잠겼구나
달빛 아래 미인같이 연연한 고운 빛이
서왕모의 반도화요 처사가의 운명화라
동풍에 휘날리니 꽃향내 진동한다
수정같은 이슬방울 거울같이 비쳤으니
청춘 미인들이 몸단장을 고루는지
달 속의 고운 선녀 상명산에 올랐는 듯
봄을 맞아 부귀함은 이를 두고 이름이라
하늘거리는 저 기상은 꽃왕이 분명하다
궁중 미인 삼천중에 뉘 아니 무색하랴
봄바람에 향기 따라 춤추는 나비런가
봄 경치와 연분이니 나비야 가지 말아
꽃바람도 전해 온다 봄 소식 물어보자
아마도 봄 다 가면 이 꽃이 이울리라*
봄철 석 달은 반나마 지났으니
사시장춘 아니어든 어이 길이 보잔 말가
봄의 신 조화로되 길이 볼 길 바이 없다
한 폭 편지지에 전생 마음 기록할 제
부귀 영화를 완연히 그려내니
나 앉은 서안(書案)* 우에 병풍같이 둘러놓고
문밖을 안 나서니 봄 석 달이 한가지라
비스듬히 누워서 꽃가지 볼 양이면
봄철이 다 가도록 떠날 날을 모르네
그리고 또 그린들 임 그리기 어렵구나
마음도 나비 되어 숭그리고 우뚝 앉아
꽃 안 지는 봄 그림은 이 또한 소회로다
제아무리 잘 그린들 못 그릴 건 임이구나
잘 그리는 모연수는 왕소군의 원수되어
천고에 남은 한을 통곡 중에 논했거늘
그리긴들 어이 하고 생각인들 어이 하리
수심으로 붓을 잡고 한숨으로 채색하니
임의 모양 그려지고 내 모양 그려지네
임 없이 그린 그림 긴 상사만 남았고나
그리고 또 그리니 긴 상사만 그렸고나
이 붓도 원수같이 그림도 명수로다
그리던 이내 그림 언제나 다 마쳐서
화장금금(花帳錦衾)*에 그림같이 마주 앉아
그림 속에 긴 상사와 태우던 내 간장을
봄날의 빙설같이 다 쓸어볼거나

-작자 미상, 「석춘사(惜春詞)」-

  • 이울리라 : 꽃이나 잎이 시들 것이다.
  • 서안: 책을 얹는 책상.
  • 화장금금 : 꽃처럼 아름다운 휘장과 비단 이불.

(나)
눈물은 눈에 있는가? 아니면 마음에 있는가? 눈에 있다면 물이 웅덩이에 고여 있는 듯한가? 마음에 있다면 피가 맥을 타고 다니는 것과 같은가? 눈에 있지 않다면, 눈물이 나오는 것은 다른 신체 부위와는 무관하게 오직 눈만이 주관하니 눈에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 마음에 있지 않다면, 마음의 움직임 없이 눈 자체로 눈물이 나오는 일이 없으니 마음에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 마치 오줌이 방광으로부터 그곳으로 나오는 것처럼 눈물이 마음으로부터 눈으로 나온다면 저것은 다 같은 물의 유(類)로서 아래로 흐른다는 성질을 잃지 않되 왜 유독 눈물만은 그렇지 않은가? 마음은 아래에 있고 눈은 위에 있는데 어찌 물인데도 아래로부터 위로 가는 이치가 있단 말인가.

비유하자면 마음은 땅이고 눈은 구름이다. 눈물은 그 사이에 있으니 비와 같다. 비는 구름에도 땅에도 있지 않다. 그러나 비가 구름에서 생기고 땅은 관여하지 않는다면, 하늘 위에는 늘 비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비는 땅에서 생기고 구름은 관여하지 않는다면, 비는 어째서 하늘로부터 내린단 말인가? 이는 기(氣)의 감응에 불과할 따름인즉, 눈물은 마음으로부터 나오고 또 눈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무릇 감응한다는 것은 사람과 귀신 사이가 멀어도 서로 통할 수 있어 제사를 드리면 선조들이 오므로 옛사람들은 다 성실하고 돈독히 제사를 드렸다. …(중략)… 제사를 드릴 때 곡만 하고 눈물이 없는 것은 이미 느낌이 없는 것인데 어찌 귀신의 응함이 있으리오? 입으로는 울부짖으나 마음속으론 기뻐한다면, 다른 사람이 그 진실되지 않음만을 볼 뿐이니 그 귀신이 다다르는 것은 말해 무엇하리오.

내게 상사(喪事)가 생겨 초빈(草殯)으로부터 계속 묘를 지킴에 어떤 때는 한 번 곡하고도 눈물이 나다가 어떤 때는 천백 번 곡 해도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 자리에서 곡함에 어찌 슬프지 않아 눈물이 안 나오는 것이겠으며, 자리에 있지 않아 곡 하지 않음에도 문득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니 신과 인간 사이의 이치는 진실로 아득하나, 느낌도 없는데 응함이 있거나 느낌이 있는데 응함이 없는 일은 없다. 여기의 느낌으로 저기의 응함을 알수 있은즉 다만 잠자리에 들고 음식을 먹을 때에만 서로 통하는게 아니다. 천 리를 떨어지고, 여러 해를 지나 즐거운 마음으로 거문고, 피리가 가득한 자리에 있을 때, 일 처리를 하느라 물건이 책상 위에 수북할 때, 술을 마셔 내 몸을 잊을 때, 바둑, 장기에 정신을 팔고 있을 때 이 모든 경우는 다 눈물과 관계없지만 무언가에 저촉됨이 있으면 느낌이 있게 된다. 느낌은 눈물과 도모하는 건 아니지만 눈물은 느낌을 따라 나오니 신이 응하게 되는 것은 향을 사르고 처연해지는 제사 때에만 그러는 게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자리와 자리 아님, 곡함과 곡하지 않음을 또한 논해 무엇하리오.

-심노숭, 「눈물의 근원[淚原]」-

  • 초빈: 시신을 입관한 후 장례 지낼 때까지 안치하는 것.
  • 신: 죽은 아내의 혼령.

[43 ~45]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순(順)아 너는 내 전(殿)에 언제 들어왔던 것이냐?
내사 언제 네 전에 들어갔던 것이냐?

우리들의 ㉠전당(殿堂)은
고풍한 풍습이 어린 사랑의 전당

순아 암사슴처럼 수정(水晶) 눈을 내려 감아라.
난 사자처럼 엉클린 머리를 고르련다.

우리들의 사랑은 한낱 벙어리였다.

청춘!
성스런 촛대에 열(熱)한 불이 꺼지기 전
순아 너는 앞문으로 내달려라.

어둠과 바람이 우리 창에 부닥치기 전
나는 영원한 사랑을 안은 채
뒷문으로 멀리 사라지련다.

이제
네게는 삼림 속의 아늑한 호수가 있고,
내게는 준험한 산맥이 있다.

-윤동주, 「사랑의 전당」-

(나)
자주 보라 자주 보라
자주 감자꽃 피어 있다
일 갈 적에도
마을회관 놀러 갈 적에도
문 안 잠그고 다니는 니 어미
누가, 자식 놈 흉이라도 볼까봐
끼니때 돌아오면
대문 꼭꼭 걸어잠그고
찬밥에 물 말아 훌훌 넘기는
칠순에 닿은 니 홀어미나
자주 보라 자주 보라,
자주 감자꽃 피어 있다
어머니가 챙겨 싸준 감자
쪼글쪼글 썩혀서 버린 ㉡화단에
자주 감자꽃은 피어,
꽃핀 나 볼라 말고
쪼글쪼글 오그라드는
니 홀어미나
자주 보라 자주 보라

-박성우, 「보라, 감자꽃」-

2026년 6월 고3 모의고사 국어 지문

Learn Korean Double Final Consonants: ㅄ, ㄵ, ㄶ (Batchim Lesson for Beginners)

Mastering Korean Double Consonants: How to Pronounce ‘ㄺ’ (Batchim) Like a Native